가상인간, 반짝 트렌드는 아닐까?
가상인간, 반짝 트렌드는 아닐까?
  • 강규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09 14:02
  • 호수 14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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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영화 〈시몬〉과 가상인간
▲ 영화 〈시몬〉 속의 사이버 여배우와 감독이 바라보고 있다.
▲ 영화 〈시몬〉 속의 사이버 여배우와 감독이 바라보고 있다.

 

유명 여배우의 중도 하차로 인해 영화 제작이 무산되려는 찰나, 빅터 타란스키 감독 앞으로 CD가 하나 날아온다. 프로그램을 여는 순간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배우의 모습이 환상처럼 드러난다. 그녀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가상의 여배우, 시몬(Simone)이다. 빅터는 시몬과 함께 영화 제작을 이어가고 세상이 놀랄만한 대작을 연이어 터뜨리게 된다. 시몬의 존재감이 날로 커짐에 따라 감독으로서의 입지는 점점 더 작아질 뿐이었다. 더구나 거짓되고 그릇된 허상에 압도당한 빅터에게는 감출 수 없는 공허함만 남게 된다. 


오늘날 가상의 인물은 고민 하나 없이 대중과 만나고 있다. 탄생의 시작부터 ‘가상인간’이라는 정체성이 주어져 모두가 이를 인지하고 있다.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Adam)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후로 가장 화제가 됐던 존재는 스캐터랩의 `이루다(Luda Lee)'이다. 블랙핑크를 좋아하고 20살 새내기 대학생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챗봇(Chat Bot)이다. 기본적인 대화가 충분히 가능할 만큼 자연스러운 단어와 문장을 구사하지만 인공지능답게 업데이트 되지 않거나 빅데이터에 없는 질문에서는 빈틈을 보인다. 종교나 정치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름 중립적인 뉘앙스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혐오와 차별, 사용자들의 성윤리, 스캐터랩의 개인데이터 활용문제 등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짧게 활동한 뒤 사라지고 말았다. 


방송을 보다가 광고를 하나 보게 됐는데 개성 있는 외모의 여성 모델이 춤을 추는 일반적인 영상이라 생각했다. 그가 가상인간 `로지(Rozy)'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상인간 로지 역시 구체적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성별, 나이, 취미 등은 가상인간들이 탄생하면서 기본적으로 새겨지는 정보가 됐으며 SNS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의 창구로 자리하고 있다. 무려 20년 전에 등장했던 사이버 가수는 말 그대로 사이버 세계 즉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캐릭터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메타버스(Metaverse)라는 키워드가 보다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가상인간 역시 매우 사실적이다. 과거의 조악함이나 어색함을 지워내고 나니 오롯이 사람 같은 느낌이랄까. 가상인간의 외모는 딥페이크 기술이 쓰였고 MZ세대들을 겨냥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눈이 크고 슬림하면서 긴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신의 포스가 아니라 눈은 찢어지고 주근깨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드러내려는 당찬 성향까지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로지나 루시는 그 자체로 유행이고 트렌드가 되고 있다. 마침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관이 4차 산업혁명 이후 화제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작금의 시점에 하나둘씩 가상인간들이 탄생하고 있고 광고계와 모델 분야 섭렵은 물론 SNS에서 인플루언서로서 활약하고 있다. 현실은 아니지만 보다 현실적인 가상의 세계관이 진짜는 아니지만 보다 진짜 같은 가상인간과 접점을 이루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들은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되고 있다. 기획사에서 보면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될 수도 있겠으나, 여러 미디어에 등장하는 순간 콘텐츠라는 폭넓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 대중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 연예인들과 달리 아무런 스캔들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의 외형과 꼭 닮은꼴이지만 `완전무결함' 자체는 사실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이를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외형적인 모습을 포함해 성향까지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느낌 자체가 거부감으로 이어지게 되면 가상인간의 트렌드를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몰입하는 사용자들에게 가상인간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저 신비로운 존재감을 뿜어내는 또 다른 세계의 인류라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들의 존폐 여부를 가르는 것은 역시 트렌드가 아닐까?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형성되는 순간부터 가상현실의 개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언급했던 VR의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이 되면서 특정 세계관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여기에 가상인간이 탄생하게 되면서 우리의 현실과 삶에 머물러 공존하고 있다. 가상인간이 MZ세대를 겨냥한 콘텐츠라면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달라지더라도 트렌드의 지속성을 가져갈 수 있을까? 트렌드나 유행이라는 것은 돌고 돌며 또 언젠가 세대를 거쳐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영원히 지속할 순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Z세대가 주축이 되는 소비 시장의 주도권과 이를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의 시도는 당분간 이어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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