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 취재팀
  • 승인 2021.11.09 13:42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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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창촌

Prologue
지난 4월 경찰이 수원역 집창촌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던 일가족을 구속한 사건을 시작으로 집창촌 단속이 강화됐다. 또한 수원, 평택, 부산 등 많은 지자체에서 성매매 집창촌 폐쇄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그 결과 2004년 전국 35개였던 성매매 집창촌은 현재 15개로 줄어들었으며 이 또한 얼마 안 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집창촌이 사라져 근처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아졌지만, 위장업소에서 성매매가 진행되는 식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성매매 집창촌의 현장과 집창촌 폐쇄 과정 전반에 관해 확인하고자 취재에 나섰다.

 

한국 최초의 집창촌, 완월동
영업 중인 집창촌을 취재하기 위해 어디로 향할지 고민하던 기자는 전국 3대 집창촌이자 한국 최초의 집창촌이 위치한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으로 향했다. 부산 사람들 사이에서 ‘완월동 집창촌’으로 불리는 이곳은 1902년 중구 광복동 일대에 설치됐던 성매매 업소들이 190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으로, 충무동으로 명칭이 바뀐 지금까지도 완월동이라 불리고 있었다. 집창촌이 자리 잡은 골목은 5층 정도의 빌라와 주택들이 밀집돼 있었으며 경사가 높은 골목을 따라 여러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여타 상점가와는 다르게 가게의 간판은 하나같이 이름이 가려져 있었고 통유리로 된 창은 내부를 은은하게 드러냈다.


건물들은 빽빽하게 모여 있어 담배꽁초와 같은 작은 불씨도 위험하게 보였다. 실제로 지난 6월에 행해진 소방특별조사에 따르면 이곳 19개 건물 중 14개 건물의 소방설비가 불량했으며 불법 증축이 이뤄진 곳도 적발됐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총 55개의 건물 중 19곳만 조사한 결과이다. 일부는 상업건물이 아닌 주택으로 등록돼 있어 매번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1년 발생한 화재로 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 전례가 있음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모습이다.


주변을 둘러보다 잠시 쉬던 기자는 우연히 집창촌 부근 가게를 나와 골목을 벗어나는 여성을 발견했다. 처음엔 경계하던 트란(25·가명) 씨는 기자의 완곡한 설득 끝에 취재에 응했다. 누가 볼까 두려워하던 그를 위해 기자는 골목과 떨어진 카페로 이동해 이야기를 나눴다. 베트남에서 왔다는 그는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성매매를 시작했다”며 처음엔 두려웠지만 수입을 보고 그만둘 수 없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그는 “수입은 주로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거나 생활비로 쓴다”며 “최근엔 코로나19에 더불어 단속 강화와 완월동 집창촌 재개발로 갈 곳이 없어질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어, 기자는 서둘러 영업장 근처로 이동했다.

▲ 통유리로 된 은하수마을 집창촌 업소 모습이다.
▲ 통유리로 된 은하수마을 집창촌 업소 모습이다.

 

자행되는 성(性)매매와 성(怒)난 목소리
최근엔 완월동 집창촌도 폐쇄와 재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골목엔 익숙한 듯이 붉은빛의 또 다른 해가 떴다. 성매매가 이뤄지는 건물에서는 붉은 형광등 불빛이 통유리를 통해 밖으로 새어 나왔고 가게 입구에는 여성들이 앉아있었다.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근처를 지나가려 하면 ‘저리 가라’며 쫓아내는 모습도 보였다. 


오후 10시 무렵 한 남성이 가게 앞 여성과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같이 건물로 들어갔다. 남자가 나오길 기다려봤지만, 그는 기자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걸음을 옮겨가며 기자는 여러 가게에 계속 인터뷰를 요청해봤지만, 선뜻 목소리를 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나가!’라는 여성의 외침과 함께 날아온 소금이 기자의 머리를 강타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기자는 골목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골목을 내려가던 찰나에 근처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구나현(21) 씨는 “집창촌이 집 바로 앞 거리에 있어 늘 불안에 떨며 다녔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그는 “어릴 때 가게에 붙은 ‘시간 7만 원, 숙박 15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을 돈으로 산다는 게 충격이었다”며 아이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지 우려했다. 완월동 집창촌 재개발 진행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재개발 얘기는 나왔지만 10년이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재개발 설문을 진행하는 걸 보면 또 흐지부지될 것 같다”며 시 차원의 빠른 행정처리를 요구했다. 기자는 집창촌 폐쇄와 재개발 진행이 지연돼 불편과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에 공감하는 한편, 과연 재개발이 이뤄진다면 모든 게 해결될지 의문이 들었다.

▲ 완월동 재개발 시작을 알리는 현수막이다.

 

사라진 어둠 속 변화의 마을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기자는 완월동 집창촌의 불빛을 뒤로한 채 60년간 성매매 집창촌이 성행했던 수원역 ‘은하수마을’을 방문했다. 은하수마을 근처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며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이에 수원시의 수원역가로정비추진단이 지난 1월부터 집창촌 내 소방도로 개설공사를 시작했다. 폐쇄에 박차를 가하는 시의 움직임에 은하수마을은 지난 6월 1일부로 전 업소가 자진 폐업했다.


기자가 본 수원역 은하수마을은 아직까진 으슥한 달동네 같았다. 단 하나의 업장도 빠짐없이 모두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볼 수 없었다. 사람의 온기를 쫓아 인근 상가를 찾은 가자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서휘(32·가명)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곳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김 씨는 “주 이용객이 집창촌 종사자와 이용객이다 보니 매출이 많이 줄었지만, 집창촌 폐쇄 이후 음산한 분위기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변화할 은하수마을에 많은 사람이 찾기를 기대했다.


다시 나온 거리의 적막한 분위기를 깨는 것은 인부들의 공사 소리뿐이었다. 그들은 폐쇄된 업장에 남겨진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원시는 은하수마을을 재개발해 주민 커뮤니티 사업을 추진하고 문화예술 활동 거점 공간으로 삼을 예정이다. 은하수마을 근처 주민 김혜성(33·가명) 씨는 “시민을 불안에 떨게 하는 불법 성매매 집결지는 당연히 폐쇄돼야 한다”며 재개발을 환영했다. 기자가 찾은 지금의 은하수마을은 더는 집창촌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은하수마을이 밝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길 바라며 기자는 발을 돌렸다.

▲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 은하수마을 거리이다.


여전히 성행 중인 성매매
그렇다면 은하수마을처럼 집창촌이 폐쇄된 이후에 성매매 종사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기자는 그들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에 버젓이 깔린 불법 유흥업소 홍보 글에는 호객뿐만 아닌 영업객을 모집하는 내용도 있었다. 해당 업소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손님인 척 전화를 걸어 봤다. 자신을 이 실장이라고 칭하던 그는 처음 이용한다는 기자의 말에 불법 성매매의 종류와 이용 가격을 설명했고 “철저한 신분 확인을 하기에 경찰 단속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소개를 마쳤다. 집창촌이 문을 닫자 성매매 종사자는 풍선효과처럼 주택가와 상가로 옮겨 결국 더 은밀히 영업할 뿐이었다. 앞선 취재에서의 기대감들은 무너졌다.


또 다른 불법 성매매 업소를 찾아 기자는 우리 대학 천안캠퍼스 주변 유흥가가 밀집된 두정동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먹자골목은 긴 도로를 중심으로 클럽과 술집, 노래방이 밀집돼 있다. 거리를 둘러보던 중 한 노래방의 간판에서 도우미를 부를 수 있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말하는 도우미란 노래방 이용 손님을 접대하는 여성이다. 기자는 해당 노래방에 들어가 도우미를 부를 수 있는지 물어 도우미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어 도우미는 어떤 일을 하는지, 경찰 단속에 걸리진 않는지 물어봤지만 어디서 나왔냐, 왜 물어보냐는 주인의 성화에 자리를 떴다.


이외에도 유사 성행위를 자행하는 마사지 업소와 아가씨를 부를 수 있다는 룸 술집을 찾았지만 모두 출입을 거절당했다. 답답한 상황에 기자는 근처 경찰서를 방문해 성매매 단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경찰관 김민우(30·가명) 씨는 “성매매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성행위를 하는 현장을 덮치거나 성행위 직후 증거가 남아있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다”며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집창촌 폐쇄를 추구하는 사회 흐름과 맞지 않게 단속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어나는 퇴폐업소를 보며 기자는 보다 현실적인 법과 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 불꺼진 은하수마을 거리이다.

 

Epilogue
기자가 방문했던 성매매 집창촌들은 겉보기엔 사라지고 있었지만, 신종·위장 성매매로 그 양상이 변화한 것일 뿐 성매매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자는 기존의 성매매와 변질된 성매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얽힌 많은 사람과 허술한 법과 제도를 발견했다. ‘성’은 인간이 가진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이제는 그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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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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