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일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 강서영 기자
  • 승인 2021.11.23 16:21
  • 호수 14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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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줄곧 작성해온 통일 글짓기, 백일장, 포스터 등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국방과 가깝고도 멀었다. 조금 더 커서 회담 개최와 미사일 훈련 소식이 교차로 들릴 즈음에는 남북관계에 모순을 느꼈다. 더 성장해 어른이 된 기자가 여전히 우리와 국방은 ‘가까운 것인가 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무렵, 국방 취재를 위해 대연평도로 향하게 됐다.

 

입항할 때 무언의 불안감을 가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의 현실은 사뭇 달랐다. 햇빛이 유독 강했던 그 날은 나비가 날아다니고 주민들이 정자에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기자는 어느새 긴장이 풀려 ‘평화’라는 시각으로 섬을 바라봤다. 섬을 이동하며 많은 자원봉사자의 손을 거쳐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벽화를 바라봤다. 벽화를 감상하다 무심코 벽에 뚫린 구멍에 시선을 빼앗긴 건 한순간이었다. 차 틈 사이로 보인 포격으로 인한 구멍은 연평도의 평화로움에 안주하던 기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되찾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취재 중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장소를 거치면서 기자는 평화롭다가도 먹먹한 감정을 내내 오갔다. 감사하며 안타까운 마음, 풀리다가도 상기된 긴장. 이렇게나 감정의 공존이 쉬운 일이었던가. 쉽게 정의 내리지는 못하지만 기자는 이를 감정의 모순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끊임없는 생각의 순환만을 지속했다. 이 한적함을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서고 근무를 이행하는 군인과 경찰들, 그들 덕분에 지켜지는 한적함이 기자에게 전하는 복잡함. 우리에게 국방은 먼 것이 아니었다,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기자는 생각보다 편한 삶을 살아왔다. 현실에 안주하며, 내 미래만 바삐 보는 평범한 삶. 사회의 두려움을 언제 느꼈냐고 묻는다면 뉴스 속 자연재해, 사건, 경쟁 등의 일을 접할 때뿐이었다. 그마저도 기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때만 긴장이 올랐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평화로움에도 막연히 안주할 수 없는 상태라면 믿겠는가. 우리는 그런 모순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비교적 인지하지 못한다. 연평도를 비롯한 최전방 지역의 사람들은 날마다 끊임없이 삶과 직결되는 이 모순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기자는 그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쉽게 가고자 마음먹을 수 없는 지역을 기자의 마음으로, 기자의 자격으로 향할 수 있던 건 큰 행운이었다. 멀리서는 깊게 느낄 수 없던 도민들의 안전과 경제에 얽힌 복잡한 어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정의롭다’는 말을 동경했던 기자는 반성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리라 결심할 계기의 장이 됐다. 개인으로서 느낀 이 깊은 감정과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펜을 든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기자가 할 수 있는 정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취재를 통해 “내일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되새기며 기자는 여전히, 앞으로도 펜을 든다. 무관심과 망각을 관심과 기억으로 전환 시킬 수 있도록.

강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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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stzero@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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