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무엇의 이름인가
코로나19는 무엇의 이름인가
  • 주재형(철학) 교수
  • 승인 2022.01.04 15:49
  • 호수 14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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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형(철학) 교수
주재형(철학) 교수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봄은 연대기적 시간과 구분되는 역사적 시간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19세기는 1900년에 끝난 것이 아니다. 그는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를 묶어 ‘장기 19세기’라고 불렀다. 이 논리를 보다 미시적으로 적용해보면, 올해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2019년의 코로나19 감염병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장기 2019년’이 올해에는 끝나 시간의 질서가 제자리를 찾길 바라면서, 코로나19는 무엇의 이름인지 질문을 던져보자.


우선 코로나19는 SARS-CoV-2라는 학명이 붙은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과 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의 이름이다. 이 전염병은 감염 속도가 빠르고 노령 인구에게 치명적이라는 점, 또 그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됐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전염병을 어떻게 부를지를 두고서 처음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을 고수했던 이들은 이 명칭에 전염병의 발원지였던 중국에 대한 비판 내지 비난의 뉘앙스를 담고자 했다. 방역의 사회 위생학과 함께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의 갈등이 이 전염병에 대한 이름 붙이기에 스며든 것이다. 코로나19는 비난의 정치를 함축하는 이름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전염병에 맞서 신속하게 또는 성급하게 개발된 백신들을 둘러싼 싸움도 기억해야 한다. 백신 거부자들은 백신의 부작용을 강조했다. 이들에게 코로나19는 일종의 감기에 불과한 전염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반대로 백신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과학자들과 방역 당국에 코로나19는 전염률, 치사율과 같은 수치로 파악되는 통계적 거시 현상의 이름이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소수의 희생을 확률로 말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부작용이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나에게 악운처럼 떨어질 현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코로나19란 이름이 놓여 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코로나19가 가속한 사회 경제적 변화다. 자영업자를 비롯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코로나19는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사회적 재앙이다. 전염병은 단지 의료 방역의 대상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숨 막히게 깨닫고 있다. 전염병 방역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회 경제적 활동을 억누르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뤄지기 어렵다. 사람들은 자유는 순순히 양보했지만, 생계란 그렇게 쉽사리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방역 안전을 위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을 손 내밀어 붙잡지 못했다. 코로나19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비정한 사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마 이것들 외에도 코로나19는 다른 많은 것들의 이름일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을 감싼 이 복잡다단한 다의성의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이 차분히 가라앉을 때, 장기 2019년도 끝날 것이다. 그 안개 너머에 희망의 풍경이 있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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