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서 멀티맨을 만나는 재미
뮤지컬에서 멀티맨을 만나는 재미
  •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
  • 승인 2022.03.15 14:31
  • 호수 14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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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만능연기자 멀티맨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단골 캐릭터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멀티맨인데, 한 명의 만능 연기자가 극 중 여러 역할로 나온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종욱 찾기>다. 택시 운전사에서 박정희 대통령 같은 군인 아버지, 스튜어디스, 인도 여행가이드, 심지어 시골 할머니로까지 변신하며 관객들을 배꼽 잡게 한다. 특히 1세대 멀티맨이었던 전병욱 씨는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뮤지컬 제목을 <김종욱 찾기> 대신 <전병욱 찾기>가 더 낫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일인다역의 재미를 형상화한 경우들이 꽤 있다. 유명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그렇다. 선한 의사 지킬 박사와 악당 하이드 씨를 번갈아 연기하는 주인공의 매력이 돋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분야의 최고 배우로 등극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할 수 있는 조승우 씨다.


무대 위 등장인물들이 모두 1인 2역인 작품 <맨 오브 라 만차>도 있다. 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우스꽝스럽지만 원리원칙에 철저했던 인물 이야기를 구상한 이유를 설명한다. 젊은 작가 세르반테스가 무대 한가운데 서서 가발을 쓰고 수염을 달면 허리 굽은 노인으로 변하는 모습 자체로 신기한 체험을 선사한다.


근작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도 흥미롭다. 가난한 주인공 몬티는 자신이 재벌 귀족 가문의 8번째 후계자인 것을 우연히 알게 된다. 사고를 가장해 자신보다 앞선 상속자들을 제거하는데, 이들을 모두 한 배우가 1인 9역으로 구현해낸다. 탄성 터지는 변신의 재미는 멀티맨 상속가가 등장할 때마다 박수갈채를 끌어낸다. 우리말 무대에선 정성화, 오만석, 한지상 등이 이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일각에서는 뮤지컬에서 멀티맨이 등장하는 이유를 제작비 절감에서 찾는다. 그러나 멀티맨의 활용은 단지 출연료를 줄이기 위한 ‘꼼수’가 아니다. 일인다역의 캐릭터가 주는 상상의 즐거움은 무대만이 지닐 수 있는 예술적 체험 중 하나다. 물론 적재적소에 너무 과하지 않게 사용한다는 전제가 따라야 하지만, 원칙만 잘 지킨다면 무대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늘 새로운 멀티맨의 등장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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