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여정 끝에 만난 소설 같은 열정의 흔적-최재천 교수
힘든 여정 끝에 만난 소설 같은 열정의 흔적-최재천 교수
  • 윤성원 기자
  • 승인 2022.03.15 16:15
  • 호수 148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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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최재천(69) 교수

 

Prologue
생명을 너무나 사랑한 이가 있다. 의대에 두 번 낙방하고 우연히 들어선 길로 소설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열대를 누비고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을 지내며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 `생명다양성재단'을 이끄는 최재천(69) 교수다. 최근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며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 있는 한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생명다양성재단을 이끄는 최재천 교수다.

 

▶ 서울대 의대를 희망했지만, 재수 끝에 2지망인 동물학과에 진학하게 된 후 한동안 방황했다고 들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기는 싫지만 나는 문과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동물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동물학과라고 말 못 해 소개팅에 나가는 것도 꺼렸고 3년을 헛되이 보냈다. 하지만 의대에 입학했어도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했을 것 같다.


 
▶ 힘든 시기였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다른 수업은 창밖이나 구경했지만, 당시 드물게 영어로 수업했던 강의는 착실히 들었다. 그 교수님이 나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미국 유타대학에서 한국에 하루살이 채집을 하러 오신 조지 애드먼즈 교수님의 조수로 일주일 정도 생활했다. 개울물에 첨벙거리며 하루살이를 잡는 게 부러워 교수님처럼 살고 싶다고 한 것이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들었다.


▶ 생물을 연구하면서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정글에서 몇 년씩 살며 흰개미를 연구했다. 흰개미는 죽은 나무껍질 틈에 사는데 나는 쓰러진 나무에 올라타 채집 중이었다. 지나가는 교수님 한 분이 나무 아래 뱀이 있다고 알려주셨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겁이 나 움직이지도 못하고 교수님을 여러 번 크게 불러 살았다. 그 뱀에 물려 연간 20~30명이 죽는다. 그렇지만 크게 위험하지는 않은 정글이다.

 

▶ 생명에 대한 가치가 바뀐 적이 있나.
미국 유학 전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발생생물학연구실에서 연구를 위해 쥐의 난자를 준비하는 것이 내 업무였다. 1년 넘게 쥐에 호르몬 주사를 놓고 매일 20마리씩 죽여 난소를 꺼냈다. 당시 백정이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였다. 하루는 한 마리를 놓쳐 실험실 어딘가로 숨어버렸는데 다음날 발견했을 때 이상하게 죽이지 못했다. 생명의 신비를 연구하기 위해 계속 생명에게 해를 입혀야 할 것 같았다. 미국에 가서는 자연의 동물을 관찰하며 생태학과 동물행동학을 공부했다. 

 

▶ 100권에 가깝게 책을 집필했는데 그중 어떤 책이 가장 애정이 가나.
열대에서 겪었던 일을 담은 『열대예찬』이다. 잡지『현대문학』에서 매달 연재한 글을 묶어 집필했는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너무 존경하는 박완서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 최 선생 글을 매달 기다리고 있다고 하셔서 너무 놀랐다. 최근에 아끼는 책이 하나 더 생겼는데 2019년에 나온『동물행동학 백과사전』이다. 동물행동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 600여 명이 동원된 연구 분야의 백과사전에 총괄 편집장으로 추대를 받아 참여하게 돼 너무 영광스러웠다.

 

▶ 생각 표현 방식이 거침없고 솔직한 단어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남의 기분을 살피고 소심한 편이다. 온화한 성격인데 사회적인 이슈에는 예외다. 바로 의견을 내지 않고 발언의 기회가 오면 나름 정제한 표현으로 말하지만, 나중에 보면 만만치 않은 표현이 제법 있다. 난 용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양심상 모른 체할 수 없는 마음에 한 번씩 나서다 보니 이런 발자취를 남겼다.

 

▶ 소신 있는 발언은 누군가의 모진 말을 들을 수 있다. 두려움은 없는가.
예상은 한다. “기왕 욕먹는 거 더 먹으면 얼마나 더 먹겠어” 하고 덤비기도 했다. 한동안 욕하려는 전화가 많이 와 전화선을 뽑고 지냈었다.

 

▶ 평소 취미가 무엇인가.
취미가 없다. 사실 취미가 대단히 많은 사람인데 많은 일을 하고 살다 보니 즐길 시간이 없다. 너무 철저한 시간 관리 덕분인지 계속 일만 해 삶이 재미가 없다. 좀 아픈 질문이다.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단 하나의 과학적 사실을 알 수 있다면 무엇을 알고 싶은가.
외계 생명의 존재 여부가 궁금하다. 지구 밖 생명의 존재는 확률의 문제다. 지구에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도 희박한 확률이지만 우주 어디에도 절대 생명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외계의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다만 그 생명은 지구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작동원리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솔직히 나도 너무 궁금하다.

 

▶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인물은 누구인가.
부모님이다. 아버지는 무섭고 엄한 분이셨다. 그 엄함 뒤에 깊은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돼 감사하다. 어머니는 엄한 남편과 살며 아들을 보호하고 키워내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셨다. 두 분께 제일 고맙다. 정말 감사하게 두 분 모두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두 글자는 무엇인가.
공감. 20년 전에 ‘호모 심비우스’라는 인간의 학명을 제안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공생인’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어떤 형태로든 공감이 이뤄져야 공생이 가능하다.


▶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들 너무 힘들어한다. 내 세대는 전쟁의 영향을 받은 약하고 부실한 세대다. 우리 청년들은 분명 더 좋은 세상에 사는데 왜 더 불행하다고 느낄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나는 빨리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두 다 함께 고민하고 싶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간단한 열쇠가 있지 않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를 청년들과 같이 생각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Epilogue
끊임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취미조차 즐기지 못하는 바쁜 삶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느껴졌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관찰하는 습관이 그를 만들었다. 미룰 대로 미루고 많은 시간에도 여유를 즐기지 못한 기자는 지나치게 게으른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고민하고 관찰하는 삶을 살다 보면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윤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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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sungwo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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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박 2022-07-05 15:02:46
가독성이 너무 좋고 기사가 잘 읽히네요. 정말 감명깊습니다. 앞으로의 기사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