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기차와 관련된 추억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본래 살던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우리는 종종 기차를 타곤 한다. 그리고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추억으로 가득 차오른다.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간이역 취재를 하러 가던 기자 역시 추억에 잠겼다. 기억 속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코로나19로 인해 객실에서 음식물 섭취가 불가능한 것 정도로 보였다.
간이역으로 가기 위해선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도착한 태백의 ‘철암역’에서 백두대간협곡열차로 갈아타야 했다.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철암역으로 이동하는 택시에서 기사가 여행 온 학생이냐며 말을 건네 왔다. 그렇다고 대답한 기자는 간이역으로 갈 것이라고 알렸다. 그는 본인이 학생일 적 기차를 타고 태백부터 대구까지 통학했던 기억을 들려줬다. 도로를 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깥의 풍경은 도시에서 빠져나와 점점 높게 뻗어있는 나무들로, 빽빽한 산으로 뒤덮였다. 간이역에서 기대한 만큼의 풍경을 즐기면 좋겠다는 기사의 말에 기자는 웃으며 내렸다.
열차 양옆으로 펼쳐진 백두대간을 가르며 도착한 첫 번째 역은 ‘승부역’이었다. 낙동강 최상류 협곡에 자리한 승부역 주변으로는 아찔하게 뻗은 산등성이가 보였다. 세평 승부역에서 짧게 정차한 후 ‘양원역’으로 이동했다. 작년 9월 개봉한 영화 <기적>의 모티브가 된 그곳은 기자가 내심 가장 기대하던 간이역이었다.
기자가 기대했던 양원역은 인근 주민들과 관광객으로 복작거리는 시장과 아기자기한 역사의 모습이었다. 사전 조사차 찾아본 블로그나 기사 속에선 농작물과 간식을 파는 인근 주민들 또한 관광객들 덕에 어려움을 해결한 것 같았다.
그러나 겨울의 추위와 코로나19로 인해 농작물을 파는 주민은 한 명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곧 떠나갔다. 몇 명의 관광객만이 영화 포스터가 붙은 양원역에서 사진을 찍었고, 금세 아무도 없어진 작은 역은 쓸쓸했다.
다음 역에서 만난 봉화군 주민 장용택(72) 씨에게서 들은 ‘분천역’은 기자의 생각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기자는 분천역을 산타 마을로 알려진 작은 역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봉화는 석탄 운송으로 과거 크게 번영했던 역사를 가졌다. 폐광과 함께 승객과 마을 주민들도 줄어들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기차와 함께 수많은 사람이 오갔던 분천역을 떠올리는 주민들의 눈에서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엿보는 것이 가능했다.
간이역과 얽힌 추억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간이역의 보존은 우리 사회의 추억을 보존하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의 추억이 곳곳에 남아 과거의 모습이 보존된 사회는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겨진 추억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는 연결 다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