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단상(斷想)
  • 임명호(심리치료) 교수
  • 승인 2022.03.29 14:45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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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호(심리치료) 교수
임명호(심리치료) 교수

정말 오랜만에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보기 시작했다. 요즈음에는 나도 외부손님들을 학교에서 만나면 목소리가 커지고 재잘재잘 소리가 가득한 캠퍼스를 자랑하기도 한다. 보름 전에 오랫동안 잘 알고 있었던 두 친구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봤다.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이었다. 두 친구 모두 우리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재원들이다. 천안캠퍼스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두 친구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었고 마음으로 응원을 해줬던 기억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에 만나서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두 친구는 정말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릴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그냥 내버려 두면 축제가 될 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 오는 꽃잎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하루하루가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임을 나도 동감한다.


예전에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전공의들에게도 자주 해줬던 이야기지만 학창 시절(혹은 수련 시절)은 돌이켜보면 삶에서 가장 힘들기도 하고,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 주변의 동료들이나, 학과 친구, 동아리 친구들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빼고 나면, 물리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살면서 좋든 싫든 가장 힘들 때, 가장 엥겔지수가 높을 때(가난할 때) 만나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대개 가족들이 첫째이고 지금 만나는 친구들이 다음일 것이다.


박완서는 『청춘』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그렇다. 젊은 날에는 청춘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30년 전의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솔직히 친구와의 즐거운 추억보다는 책과의 고단함이 훨씬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우연히 들린 낯선 가게에서 인생 짬뽕의 맛을 보았을 때처럼, 삶은 가끔 예측 불가능한 기쁨을 준다. 이러한 소확행들이 젊은 시절의 고단함을 견뎌내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대학에 막 들어온 젊은 학우들에게 막연히 청춘에 대한 찬양만 하려는 건 아니다. 청년들의 직업 문제, 주거 문제, 현실의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깊이 공감한다. 다만 우리 학우들이 너무 조급해하지 않고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캠퍼스 주변 풍경도 보고 친구들과도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 좋겠다. 버스커버스커의 가사가 아니어도 우리 캠퍼스는 참 예쁜 곳이다. 끝으로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항상 학우들에게 전하는 루쉰의 글을 적어본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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