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달린 나만의 극장으로
바퀴 달린 나만의 극장으로
  • 윤성원 기자
  • 승인 2022.03.29 14:50
  • 호수 148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 자동차 극장

사람들은 모두 낭만을 즐기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 기자는 평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낭만을 찾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방문한 날짜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취미가 됐다.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넓은 영화관을 온전히 느끼는 것 같아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지만, 이 또한 쉽게 누릴 수 없게 됐다. 집에서 OTT(OverTheTop) 서비스로 혼자 영화 보는 것에도 질릴 때쯤 예전부터 가려고 마음 먹었던 자동차 극장이 생각났다. 기자는 당장 주변의 자동차 극장 시간표를 검색했다. 집 근처의 자동차 극장은 이미 영업을 종료한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가족들과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용인 자동차 극장을 찾았다.

 

▲ 극장 후기가 적힌 포스트잇이 매점 벽에 가득하다.
▲ 극장 후기가 적힌 포스트잇이 매점 벽에 가득하다.

 

그렇게 방문한 용인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기로 했다. 그곳은 예약 없이 현장 발권만 가능했고 차 한 대당 2만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상상만 했던 자동차 극장을 가게 되니 기자는 왠지 모르게 들뜬 기분이 들었다. 


자동차 극장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더 번화한 곳에 있었다. 상영관은 총 2개였고 각기 다른 영화를 상영했다. 가장 먼저 상영관에 도착한 기자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영화가 가장 잘 보이는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계속 차에 있어 조금 답답했던 기자는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봤다. 양 끝에 흰 스크린이 있는 것을 제외하곤 넓은 주차장 같아 보였다. 그때 극장 한가운데에 있는 컨테이너 매점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칙칙한 컨테이너의 외부와 달리 매점 내부는 정말 알록달록했다. 여러 먹을거리가 있었던 매점은 마치 영화 속 세트장 같았다. 어느새 배가 고파진 기자는 라면과 팝콘, 치아바타 핫도그, 샌드위치와 음료 두 개를 샀다.

 

▲ 상영 전 차에서 먹은 저녁거리다.
▲ 상영 전 차에서 먹은 저녁거리다.

 

핫도그와 샌드위치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기다리며 내부를 구경하다 벽에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여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양한 글씨체로 적힌 저마다의 내용을 찬찬히 읽다 보니, 이곳에 와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됐다. 마침 다 데워진 음식을 차로 가져와 끼니를 때웠다. 좁은 차 안에서 저녁을 먹으니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너무 허기진 탓에 음식을 금방 먹어버렸다. 배가 다 차진 않았지만 남은 배고픔은 잠시 후 팝콘으로 채우기로 했다.


밥을 다 먹고 잠시 기다리니 스크린에 안내 사항이 나왔다. 안내 사항에 따라 주파수를 맞추니 차 내부 라디오로 영화의 음향이 들려왔다. 차 오디오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이 순식간에 평화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곧이어 영화가 시작됐고 라디오로 듣는 음향은 생각보다 풍족했다. 덕분에 기자는 팝콘까지 한 주먹 가득 쥐어 먹으며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 극장 직원에게 건네받은 휴대용 라디오다.
▲ 극장 직원에게 건네받은 휴대용 라디오다.

 

그러던 중 갑자기 영화 소리가 끊겼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없이 영화를 즐기고 있는걸 보니 극장이 아닌 차의 문제인 것 같았다. 당황한 기자는 휴대전화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을지 찾아봤지만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다들 영화에 집중해 차에서 나오기 눈치 보였지만, 용기를 내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은 웃으며 “이런 상황을 대비해 휴대용 라디오를 구비해두고 있다”며 작은 라디오 하나를 건넸다.


상영이 끝나고 잠깐 차에서 내려 굳은 몸을 풀었다. 밝은 도심 속 어둡고 큰 공터에 있으니 비밀스러운 공간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어둠이 짙은 밤이 됐다. 자동차 극장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여운은 꽤 오래갔다.

 

▲ 밤이 되자 자동차 극장의 매점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 밤이 되자 자동차 극장의 매점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설렘을 느낀 것처럼 기자도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편하게 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동차 극장은, 오랜 시간 동안 극장에서 편히 영화를 보지 못했던 기자를 위한 선물 같았다. 잠깐이지만 평화로웠던 기억은 또 하나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윤성원 기자
윤성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onsungwon@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