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열차 속 멈춘 시간
달리는 열차 속 멈춘 시간
  • 박아영·이정온 기자
  • 승인 2022.03.29 14:52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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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Prologue

보통역보다 낮은 등급의 역으로, 이용객이 많지 않아 큰 비용을 들여 역을 운영할 필요가 없을 때 지정된다는 간이역. 우리나라에는 현재 800여 개의 간이역이 있다. 특유의 목가적인 분위기 덕분에 간이역은 영화 <기적>의 모티브였던 양원역처럼 각종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 효율성이 낮아 무인 또는 무정차로 운영되다가 수익성이 떨어질 시에는 철거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철도와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간이역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기자는 백두대간협곡열차(이하 협곡열차) 분천역행 표를 예매해 기점역인 철암역으로 향했다.

 

간이역을 향한 발걸음
백호 무늬의 협곡열차가 들어오고 기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탔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열차 내부는 창 쪽을 바라보는 좌석과 일행과 함께 앉을 수 있는 좌석으로 이뤄져 있었다. 30여 명의 승객이 타자 협곡열차는 출발 안내 방송과 함께 느릿느릿 달리기 시작했다.


기차는 백두대간을 따라 영동선의 ‘철암역’, ‘승부역’, ‘양원역’, ‘분천역’을 거쳤다. 열차가 출발하고 산과 계곡의 풍경이 기자의 눈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계곡의 무수히 많은 곡선이 이어졌고, 기차는 그를 따라 계속 달렸다. 가족 단위의 승객들은 저마다 창밖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열차에 탄 박성철(54·가명) 씨는 “최근에 여행을 다니지 못해 오랜만에 여행 분위기를 내고 싶어 아내와 알아보다가 협곡 열차를 예매했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한참을 달리니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동점역’과 ‘석포역’이 보였다. 역사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역 주변에는 건설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역을 보며 기자는 사람이 타고 내렸을 과거의 모습을 상상했다. 기차는 가지런히 쌓인 철골을 지나 드디어 첫 번째 정차 역인 승부역에 멈췄다.

▲ 세평 승부역 옆으로 쉼터가 보인다.
▲ 세평 승부역 옆으로 쉼터가 보인다.

점점 줄어드는 승객, 추워지는 간이역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시구의 주인공, 승부역은 낙동강 최상류 협곡에 있다. 차로 접근할 수 없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있는 간이역으로 불린다. 실제로 기자가 본 역의 크기는 협곡 사이로 보이는 세평 하늘만큼이나 작았다. 역에 내려 주위를 살피니 먹거리를 파는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승부역에서 간식거리를 팔고 있던 운명숙(가명·47)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손님이 많이 줄었는데, 그나마 협곡열차 덕분에 손님이 어느 정도 오는 편”이라고 말하며 현 상황을 한탄했다. 기자는 그의 말에서 간이역 인근 주민의 씁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인과 대화하며 어묵을 먹으니 금세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됐다. 관광객들도 역 주변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열차에 올라탔다.


다음으로 기차는 양원역에 정차했다. 양원역은 1988년 마을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탄원해 세운 국내 최초 민자 역사다. 역이 없던 시절, 봉화 춘양장에서 장을 본 마을 주민들은 달리는 기차에서 이곳 철길에 장바구니를 던져두고 승부역에 내려 되돌아 걸어왔다고 한다. 특이한 설립 과정 때문인지 작은 시골역이라는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에도 꽤 나왔던 터라 기자는 가장 기대하며 열차에서 하차했다.

▲ 승객들이 잠깐 열차에서 내려 간식거리를 사고 있다.
▲ 승객들이 잠깐 열차에서 내려 간식거리를 사고 있다.

기자는 농산물과 먹거리를 팔러 나온 상인들로 북적일 거라 예상했지만, 현실의 양원역은 다큐멘터리 속 역사보다 더 작고 황량했다. 직접 기른 농산물과 막걸리, 먹을거리를 파는 마을 주민들은 추위 탓에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기자는 유일하게 장사하고 있는 주민에게 다가가 근황을 물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함께 장사하던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협곡 열차를 타거나 양원역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식사를 못 하니 먹을거리가 팔리지 않아 힘들다”고 말했다. 날이 추워져 집에 가야겠다며 장사를 접고 있는 그의 모습에 기자는 간이역에 서는 열차가 더 늘어나기를 바라며 출발을 기다리는 열차에 올라탔다.

 

365일 줄곧 크리스마스, 분천역
주민의 애환과 간절함이 배어있는 양원역을 뒤로한 채, 기차는 협곡열차 회차역인 분천역을 향해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분천역입니다.” 30분을 달렸을까, 하차 준비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들이 일체 내릴 준비를 하자, 기자도 분주히 짐을 챙겨 분천역에 하차했다.


내리자마자 산타를 테마로 한 작은 역사가 보였다. 산타 기차를 타고 온 여흥을 살리려는 듯 크리스마스 대형트리와 루돌프 마차, 굴뚝에 매달린 산타 등 이런저런 놀이시설이 소박하게 마련돼 있었다. 역내 모든 장소가 포토존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간이역은 어른들만의 추억이 서린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여우천에서 갈라진 물줄기가 낙동강으로 흐른다고 해 이름 붙여진 분천역은 1956년 영암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한때 열차로 나무와 석탄을 수송하며 번영했던 산골짜기 간이역이었으나, 관광열차 운행 시작 동시에 스위스 체르마트와 자매결연을 맺으며 봉화군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도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옛말이 됐다. 기자는 역사에서 7분 거리에 있는 경로당에서 장용택(72) 씨를 만나 분천역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분천역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이 없었다며 “농사짓는 집 세 채가 살다가 기찻길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 씨는 “역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됐을 것”이라며 분천역은 마을 주민에게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시설이라고 말했다. 산타 마을 또한 분천역의 지속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설명한 그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산타 우체통에 소망 편지 넣어 보내기, 얼음 썰매 타기와 같이 다양한 체험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관광객에게는 목적지 전 잠깐 들리는 작은 역이라 할지라도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눈이 내리는 날 한 번 더 방문하겠다고 그에게 약속하며 경로당을 나섰다.

▲ 이종묵 역장이 열차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 이종묵 역장이 열차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분천역에 돌아온 기자는 역사 대합실 내부를 살펴봤다. 승객들은 화목난로 앞 나무 의자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일부 관광객들이 표를 끊는 중이었다. 분천역 이종묵(58) 역장은 손님들이 보는 간이역과 철도 회사가 보는 간이역의 관점은 다르다며 “사람이 근무하는 곳을 보통역으로 보고, 사람이 근무하지 않는 곳은 무인역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또한 “분천역은 규정상으로는 보통역이지만, 고객들의 시선에서는 간이역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분천역을 소개하며 간이역이 주민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엔 “간이역은 하나의 추억”이라고 답했다.


역무원조차 없는 무인역들이 많이 생기는 현실이다. 이에 이 역장은 “철도 회사 방침에 의해서 전후를 따져 직원을 줄이거나 무인역으로 전환하는 판단을 내린다”며 “무인 간이역이 될 충분한 이유는 있지만, 한편으로 안타깝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그 전환이 천천히 됐으면 좋겠다는 그는 “현실적으로 간이역들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맞지만 간이역이 사라지는 건 추억이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기에 관광객분들이 간이역을 많이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이역이 갖는 의미
대부분의 지방 소재 간이역은 보통역에 비해 지속적인 이용객의 감소에 따른 수익성 감소, 선로 이설이나 폐선으로 어느 순간 무인역에서 폐역이 될 수 있다는 불안함이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힌 ‘화본역’ 또한 내년 12월에 ‘군위역’이 신설되면서 무배차 간이역인 ‘우보역’, ‘봉림역’과 함께 폐역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폐역을 막기 위해 해당 간이역 관계자와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이를 좀 더 알아보고자, 기자는 역세권 감소로 이용객이 감소해왔으나 2007년 어린이 철도체험학습을 운영하면서부터 꾸준히 사람들이 찾고 있는 충청남도 논산시 소재 ‘연산역’을 방문했다.

▲ 열차체험을 위해 조성한 연산역 새마을호 객차다.
▲ 철도체험을 위해 조성한 연산역 새마을호 객차다.

기자는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2시간 40분을 달려야 연산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에 도착해 주변을 살피자 하차한 사람이 기자밖에 없어 당황했다. 한산한 역사 안에 들어서자 다양한 체험 거리로 레일바이크, 토끼장, 새마을호 객차 등이 조성돼 있었다. 역사를 둘러보고 있던 기자를 발견한 연산역 황기만(53) 부역장은 “공간 한계와 유지관리 부분 등 여러 이유로 지금은 철도문화체험 일부만 진행하고 있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본래 두 명이 연산역을 관리했다던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이용객이 줄어 작년 8월부터 1명이 역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부역장은 “사실 우리 역도 폐역 걱정이 있었다”며 “철도문화체험으로 그런 걱정이 많이 없어졌지만,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간이역은 철도와 지역 사회의 가교 역할이라고 정의한 그는 마지막으로 기자에게 “철도문화체험을 통해 우리 지역 사회를 홍보하고 싶다”며 “이를 통해 연산역이 끝까지 살아남아 계속됐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말을 건넸다.

 

Epilogue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굳건하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던 역들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험을 가까스로 넘겼다.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던 간이역은 이제 관광지가 돼 이전 세대와 우리 세대를 추억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용하는 승객이 적어졌어도 간이역이 사라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이역은 마을 주민들의 성장을 함께한 생활 터전이었다. 간혹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도 간이역이 우리 사회에 추억이라는 모습으로 남아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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