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전하는 마음을 받으셨나요-이정화 서예가
먹으로 전하는 마음을 받으셨나요-이정화 서예가
  • 윤다운 기자
  • 승인 2022.03.29 14:43
  • 호수 14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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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이정화(32) 씨

 

▲ 이정화 서예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환히 웃고 있다.

 

Prologue

<동이>, <뿌리 깊은 나무>, <미스터 션샤인>, <신입 사관 구해령> 등 수많은 사극에서 대필로 활약하고 서예를 알리는 강연과 전시, 저술로 얼굴을 비친 서예가가 있다. 최근에는 마스크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히 진행하며 서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고 있다. 서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는 이정화(32) 서예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인중(仁中) 이정화다. 서예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7살부터 서예를 시작했다.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경기대 서예문자 예술학과를 졸업했다. 

 

▶ 호 `인중(仁中)'은 무얼 의미하나.
논어의 한 구절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뜻을 깊게 세우면 그 안에 인(仁)이 있다는 뜻으로 모든 것엔 다 사랑이 분포돼 있음을 뜻하는데 요즘에는 이중적인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서예를 알리려고 노력하니 `인중'의 `인'이 `사람인(人)' 같다고도 하신다. 그 중의성처럼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서예가가 되고 싶다. 

▲ 흐르는 시간을 배에 비유한 작품, <시간>이다.

▶ 처음 붓을 잡은 계기가 궁금하다. 
부모님의 서예 학원을 집처럼 드나들다 보니 서예 물품이 장난감처럼 친숙했다. 그만큼 서예는 항상 내 곁에 있었기에 어떤 이유로 시작했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붓을 잡았다. 부모님 밑에서 세 자매 모두 같은 이유로 서예를 시작했으나 지금은 나만 서예를 하고 있다. 

 

▶ 서예가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중국어 통역사를 꿈꿨다. 그러다 3학년이 돼서는 이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이 맞나 고민했다. 그래서 당시 중국어 통역사가 되고 싶은 이유와 서예가가 되고 싶은 이유를 종이에 적고 비교해 봤다. 결국 통역사를 향한 관심은 중국어와 그 문화에 대한 관심보다 정장을 입고 세계 각지를 다니는 외적인 모습에 끌린 것임을 깨달았다. 반면 직업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서예는 한글 서예를 중국으로 알리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이 많았기에 서예가의 길을 택했다. 

 

▶ 아버지께서 교수로 계신 학교에 다녔다. 학업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대학교 4학년과 대학원 시절에 아버지의 수업을 들었다. 사실 대학생 시절의 나는 공부보다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학과에서도 존경받는 교수님이셨기에 아버지의 수업을 들을 때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 투표하는 모습을 본뜬 작품, <투표>다.

 

▶ 같은 인중(仁中)의 작품임에도 작품마다 각기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예는 한 사람에게서 계속 같은 필체가 나오는 것을 발전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지양한다. 작품에 따라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게 부담될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의도를 달리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서예의 장점인 것 같다.

 

▶ 아리랑 세계 유랑단의 소속 단원으로 많은 나라를 다녀왔다. 서예를 본 외국인들의 반응이 어땠나. 
붓이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은 처음에는 다루기 어려워했지만, 점차 다양한 느낌으로 글씨를 쓰게 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또 한지와 먹, 흰색과 검은색만으로도 다채로운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더라.

 

▶ <해를 품은 달>, <뿌리 깊은 나무>, <미스터 션샤인> 등 많은 드라마의 글씨 대역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장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촬영 때였다. 극 중 주인공인 `애신'은 강한 캐릭터였기에 배우 김태리 씨의 대필을 할 때는 날카롭고 두꺼운 느낌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한번은 `보고십엇소'라는 문구로 자기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여자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최대한 부드럽게 썼다. 이 방송이 나간 후 이 글에 정말 애신의 마음이 담긴 것 같다는 평을 듣게 됐고 내 마음이 사람들에게 서체 자체로 전달된 것 같아 짜릿함을 느꼈다.


  
▶ 대필하려면 연기력도 필요하지 않나. 상황에 몰입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혼자서 연기자가 되면 된다. 보통 촬영장에 가면 대필을 할 장면을 배우가 먼저 촬영하는데, 그 배우의 연기를 관찰하고 감정에 이입하려고 한다. 내가 특별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하지 않나. 나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하고 글을 쓰기 때문에 글씨에 감정이 묻어나는 것 같다.

 

▶ 본인을 서예 전도사로 소개한다. 서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서예의 매력은 무엇인가.
평소의 나는 말이 많은 편이지만 서예를 하는 순간만큼은 차분하게 마음을 정돈한다. 이런 나와는 달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드러내지 못한 감정을 서예를 통해 펼쳐낼 수 있다고 하더라. 또 다른 서예의 매력은 지워지지 않는 속성이다. 컴퓨터 타자, 연필과는 달리 서예는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서예에 한 번 마음을 새기면 끝까지 간직할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어떤 활동과 여가를 즐기나.
TV를 즐겨본다. 차이가 있다면 그 와중에 툭 나오는 생각을 적어놨다가 서예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평소 즐겨보는 <싱어게인> 같은 경연프로그램이나 `넷플릭스' 시리즈를 시청할 때 서예가 많이 대입된다. <싱어게인>에서 심사위원이 “당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약간의 대중성을 가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서예도 그렇지'하는 생각을 했다.


  
▶ 서예를 하며 슬럼프가 온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20대 중반, 세계 일주도 다녀오고 몇천 명 규모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도 하며 인지도를 쌓았음에도 뭔지 모를 압박감을 느낀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을 해보니 스스로 내 전성기를 서른으로 한정한 것이 문제였다. 당시 ‘청년 서예가’라는 수식어가 내게 붙었고, 나 자신도 청년이란 점을 강점으로 여겼기에 청년의 끝은 곧 서예 인생의 끝이라는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꾸준히 경력을 쌓으며 슬럼프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따뜻한 마음이다. 붓을 잡고 있는데 세상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속물적인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방사우와 함께함에 앞서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져야 서예에 대한 내 신조를 경제적인 대가와 맞바꾸지 않고 부도덕한 일에 내 능력을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서예가는 글씨를 쓰며 나무, 하늘, 산 같은 자연을 자주 바라본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나무를 관찰하다 보면 잎이 많은 나무는 높이 자라기 어려운 걸 알게 된다. 어떤 나무든 가지치기를 하는 이유는 나무의 키를 더 키우기 위함이다. 대학생으로서 겪는 많은 어려움을 더 크기 위한 가지치기의 단계라고 생각하고, 좀만 더 힘을 내다보면 어느새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pilogue
서예가 인중은 본인이 원하는 30년 뒤의 모습을 묻는 말에 “지금처럼 글씨 쓰기를 즐기면서도 옹졸하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고 답했다. 자신의 삶 전체를 먹으로 채웠음에도 그 열정이 식기는커녕 더 깊어가길 바란다는 그를 보며 서예의 매력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이것이 그가 서예를 알리는 방법일까. 멈추지 않고 서예를 전할 그의 행보가 더 기대된다. 

윤다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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