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워지는 자기처럼 견고해지는 길
구워지는 자기처럼 견고해지는 길
  • 박민규·윤성원 기자
  • 승인 2022.04.05 14:36
  • 호수 14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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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기능장

Prologue
2008년 3월 24일,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백동연죽장’은 기능보유자 양인석 씨의 별세와 전수교육자의 전승 포기로 인해 무형문화재 종목에서 해제됐다.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1991년 지정된 ‘줄타기’는 기능보유자 조송자 씨가 명맥을 이을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2000년 이후 볼 수 없게 됐다. 긴 세월이 축적된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다만 시대의 흐름은 이를 거부하고, 우리 문화는 풍파를 맞고 있다. 반드시 사람이 전승받아야만 보존되는 것이 무형문화재다.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전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맥이 끊기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이에 본지는 전승자의 부재로 인한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고충을 취재하기 위해 ‘문경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관’으로 향했다.

▲  기와로 된 지붕이 돋보이는 전수관 입구다.
▲ 기와로 된 지붕이 돋보이는 전수관 입구다.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전국 곳곳엔 160여 개의 전수교육관이 있다. 기자는 그중 문경새재로 유명한 문경에 있는 도자기 기능장인 사기장과 연락이 닿아 문경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관(이하 전수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한옥 형태를 갖추고 있음에도 현대적인 느낌을 풍기는 건물이 보였다. 기자는 한눈에 그 건물이 전통을 잇는 전수관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건물 2층에선 제56회 도자기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9대 국가무형문화재 사기장 이수자가 금상을 수상’했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전수관에서는 일반인들도 쉽게 도자기를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실제 이어져 내려오는 도자기 기법은 오랜 시간 수련해야 하기에 이를 위한 전수생 수업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1층에는 300여 년의 맥을 이어온 백산 도자기 가문의 역사가 담긴 작품이 그 기백을 자랑했다. 새하얀 백자와 3세기를 함께해 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얼마나 큰 자부심을 품고 도자기를 만드는지 느낄 수 있었다.

▲  작업장에 놓여진 자기가 사기장의 손길을 기다린다.
▲ 작업장에 놓여진 자기가 사기장의 손길을 기다린다.

사기장이란 국가기관인 사옹원에서 사기를 제작하던 장인을 일컫는 말이다. 영남요 가문은 9대째 사기장을 배출하고 있다. 기자는 7대 기능 보유자 백산 김정옥(82) 사기장을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김 사기장에 의하면 해당 전수관은 한국 도자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고 문화유산 콘텐츠를 활성화해 한국 국가 무형문화재의 가치와 사기장의 역할을 홍보하기 위해 설립됐다고 한다. 공예 기능장 60여 명 중 5명 남짓만이 이곳처럼 큰 전수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 관할 시·도청과 문화재청 측에서는 “40억 원이라는 큰 비용을 들여 지어도 잠자는 공간으로 남을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김 사기장은 현재 전수관을 잘 운영함으로써 걱정했던 목소리를 잠재웠다.

 

열정이 만들어낸 견고한 자기
전수관을 나온 기자는 작업장에 방문했다. 그곳에서 김지훈(28) 사기장 이수자가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섬세한 손길과 성형 기물에 손을 대는 순간마다 변하는 흙의 형태에서 작업이 얼마나 고도화된 집중력을 요구하는지 느껴졌다. 형태를 만드는 성형 과정이 끝난 기물들은 1차 건조 과정을 거친다. 작업장 주변에는 수많은 기물이 건조되고 있었다. 작업하면서 그가 흘리는 땀방울과 도자기에 담겨있는 그의 정성은 건조되고 있는 기물의 수와 비례하는 듯했다.

▲  전수관 뒤 가마가 계단식으로 위치해 있다.
▲ 전수관 뒤 가마가 계단식으로 위치해 있다.

성형 과정을 보고 있던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준 김 사기장 이수자는 자기를 굽는 과정을 소개했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는 계단 형식으로 길게 나열된 모양새였다. 그는 “가마는 자기를 굽기 전 예열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만 8시간 정도가 소요된다”며 “계속해서 땔감을 넣어 줘야 하므로 이 기간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예열이 끝나고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는 10시간 정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한번 구워 나온 초벌 도자기는 건조 과정을 거쳐 유약에 덮이게 된다. 그 후 다시 한번 가마로 들어가 재벌 과정을 통해 완성의 단계에 다다른다.

 
복잡한 공정 과정을 담고 있는 도자기 문화에 대해 김 사기장 이수자는 “도자기 제작 전통 기법 자체가 대를 이어서 나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누군가가 이런 훌륭한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이 문화가 소멸하지 않길 소망했다. 문화적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그에게서 가마에서 뜨거운 열을 견디고 한층 더 견고해진 자기의 모습이 투영돼 보였다.

 

전승을 위한 노력
전승을 위한 백산 도자기 가문의 노력은 단순히 현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에서 시작된 백산 도자기 가문의 역사는 재료가 있는 곳을 따라 문경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현재 전승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김 사기장에 따르면 과거 전수 교육생들은 작업장에서 일을 도와주며 전통 기법을 배웠다고 한다. 일명 ‘도제식 수업’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함께 일상을 같이 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는 전수 교육 시스템을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 불가피하게 도제식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정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최대 하루 8시간 정도 전수 교육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전수관 관계자는 “도자기는 주로 그릇으로 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이라고 하면서도 “전통 기법으로 제작하는 방식은 터득하기 매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전수관은 일반인들이 전통 기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자기 제작 과정을 접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며 일반인들이 한국 전통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고 전통문화 대중화를 위한 전수관의 노력을 알렸다.

▲  김지훈 사기장 이수자가 노래를 들으며 물레를 밟고 있다.
▲ 김지훈 사기장 이수자가 노래를 들으며 물레를 밟고 있다.

기자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지나친 작업장에서는 여전히 작업에 열중인 김 사기장 이수자를 볼 수 있었다. 선대에서 후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온 전통 기법의 가치는 계속해서 보존돼야 한다. 전수관에 자리 잡은 3대에 걸친 자기 작품들이 대가 끊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후대의 문화를 위해 
기자는 전수관 관장실로 향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듣기를 청했다. 현재 정부는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 한 달에 150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김 사기장은 이에 대해 “그나마 공예 분야는 국가에서 공예품을 판매할 수 있어 사정이 괜찮지만, 다른 분야들은 지급된 금액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한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만큼 의료 혜택을 추가로 제공해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라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 노력을 바랐다.


전수관에서의 취재를 마친 후 뒤를 돌아보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오점이 생겨 부순 자기들이었다. 자기 더미를 바라보고 있는 기자에게 김 사기장 이수자는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부숴도 금방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흙으로 돌아가 사라지지만, 전통 기법은 후세에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  깨진 도자기는 흙으로 돌아간다.
▲ 깨진 도자기는 흙으로 돌아간다.

기자는 전수관에서 나와 자기 문화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를 알아보기 위해 박문새(가명·57) 씨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자기 제작 기술이 국가무형문화재 105호에 등재됐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그의 말을 통해 시민들이 가진 자기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며 시민들의 삶에는 이미 자기 문화가 깊숙이 물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와 공존하는 시민들을 위해, 더 나아가 한국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속하기 위해선 모든 무형문화재가 반드시 보존돼야 하지 않겠는가.

 

Epilogue
‘국립무형유산원’에선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를 운영 중이다. 또한 ‘문화재청’은 작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문화재청 소관 법률 개정안 5건을 공포했다. 문화재 보존에 대한 정책이 아주 미흡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전수관 홈페이지와 대중을 위한 체험 행사는 턱없이 부족하거나 부재한 실정이며 보유자들은 생계 지원과 계승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들은 지원과 별개로 상품 판로 개척을 도모하며 문화재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으나, 이 역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멈출 것이 아니라 계승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지원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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