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토퍼를 아시나요?
쇼스토퍼를 아시나요?
  •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
  • 승인 2022.05.10 13:15
  • 호수 14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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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쇼스토퍼
▲ 쇼스토퍼가 즐비한 <레미제라블>의 옥외광고다.

뮤지컬에서는 음악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창기 연극인들이 주축이 돼 뮤지컬을 소개했던 탓에 ‘노래가 나오는 연극’ 혹은 ‘연극의 한 지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선입견이자 편견이다. 뮤지컬의 조상은 연극보다 오페라라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과 연극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음악적 관습의 존재 여부다. 예를 들자면, 서곡(Overture)이 그렇다. 서곡은 극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로 작곡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뮤지컬 후반부에 등장하는 주요 멜로디를 편곡해 미리 들려준다. 관객이 특정 선율이나 음악에 익숙해지게 만들려는 일종의 ‘맛보기’ 같은 배려다.


연극에선 대사가 멋지다고 도중에 손뼉 치는 일이 없지만, 뮤지컬에선 좋은 노래엔 손뼉을 치는 것도 일반적이다. 박수 소리가 쏟아지면 배우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얼음 땡’ 놀이를 하듯 환호가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린다. 영어로는 프리즈 모멘트(Freez Moment)라 부르는데, 배우가 마치 얼음처럼 멈춰 서서 기다린다는 의미다. 


그런 순간에 등장하는 노래들을 쇼스토퍼(Showstopper)라 부른다. 말 그대로 쇼를 멈추는 마법과 같은 노래란 의미다. 가수나 성악가 중에는 뮤지컬의 쇼스토퍼들을 모아 음반을 발매하기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발라드의 황제라 불리던 배리 매닐로우가 1991년 발매했던 음반 <쇼스토퍼스>가 대표적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레미제라블>, <밴드웨건> 등에 등장하는 뮤지컬 명곡들로 꾸며진 음반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브로드웨이로의 귀환>이나 조수미의 <온리 러브>도 마찬가지다.


세기의 피겨스케이터 김연아가 전성기에 주로 사용했던 음악들 역시 쇼스토퍼였다. ‘어릿광대를 보내 주오’나 ‘나홀로’같은 음악들이 그렇다. 김연아의 훌륭한 기교와 아름다운 안무가 빛났던 이유는 뮤지컬 속 명곡들과 어우러져 한 편의 무대를 감상하는 것 같은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성공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쇼스토퍼로 인해 뮤지컬은 단순한 무대예술을 넘어 문화산업으로의 파생력과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 그 과정에서의 감동은 덤으로 받는 값진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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