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의 의미
술 한 잔의 의미
  • 박아영 기자
  • 승인 2022.05.24 13:44
  • 호수 14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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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기자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시절 기자에겐 너무나 먼 미래였기 때문이다. 주변에 어른이란 가족과 학교 선생님뿐이었다. 그렇기에 어른이란 존재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기자와는 다른 세상의 존재인 줄로만 알았다.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생각이 바뀌진 않았다. 굳이 다른 점을 말하자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을 할지 상상해보긴 했다. 하지만 그 시절 기자에겐 대학 진학이 삶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 “수능만 끝나라”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틸 뿐이었다.


20살이 되고 음주에 대한 제재가 풀리면서 성인이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학생 시절,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기자는 항상 술집에 가보고 싶다고 답했다. 가게에 가지런히 전시돼있는 술을 보며 술맛이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첫술을 부모님과 마시며 주도를 배웠다. 술맛이 어떠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기자는 너무 쓰다고 찡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술맛이 달게 느껴지면 인생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대학교에 진학하니 술을 마시는 자리가 늘어났다. 신문사, 동아리, 학과 회식 등 다양한 회식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자리에는 술이 항상 있었다. 애인과 헤어졌을 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울고 싶은데 창피할 때,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술이나 먹을래?” 모두 이렇게 물어보지 않는가.


대학생에게 술은 희로애락이며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우리와 가까운 존재인 만큼 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눈으로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기자는 양조 과정을 보고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장님은 코로나19로 많은 시장이 침체된 것에 비해 주류시장은 오히려 상황이 좋아졌다며 “젊은 세대들이 삶이 힘든지 술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기자는 삶에 치여 지친 청년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법이 술이라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었다.


지금의 기자는 과거에 비해 어른의 위치에 꽤 근접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일과 사람들에게 부딪히면서 마냥 쓰던 술맛도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그 지독히 쓴 술을 저절로 찾을 때도 있다. 술이 점점 달다고 느끼는 것을 보니 아버지가 하셨던 말처럼 이제 기자도 인생의 쓴맛을 알아가는 듯하다.


다들 아무 걱정이 없던 어릴 때가 좋았다고 한다. 바쁜 일정과 인간관계로 지친 기자를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때로 돌아가겠느냐고 물어본다면 기자는 거절할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의 추억대로 너무 소중하고, 이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란다. 다만 최대한 인생의 쓴맛은 뒤늦게 알기를 바란다. 어른의 시간을 이미 겪은 어머니의 말씀으로 마치고자 한다. “크면 다 알게 돼 있어. 뭣 하러 지금부터 맛보려고.”

박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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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young@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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