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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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호(심리치료) 교수
  • 승인 2022.05.24 14:07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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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호(심리치료) 교수
임명호(심리치료) 교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라이프〉라는 영화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한 젊은 남성 A는 죽어서 천당/지옥을 가기 전에 한 달 정도 머무는 임시정류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주로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A는 전쟁에 징용으로 나갔다가 죽었는데 그는 고향에 두고 온 애인 B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살아온 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하나만 고르면 그 기억을 다음 세상에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A는 B가 갖고 간 추억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기록을 찾아보니 B는 A가 전쟁에서 죽은 후에 기다리다가 결국 다른 남성과 결혼했는데, 역시나 B가 선택한 추억은 A가 전쟁에 징용되기 전에 함께 마지막으로 데이트했던 추억이었다. 한편 이후 한 늙은 남성 C가 이곳 임시정류소에 오는데 주인공 A는 그가 애인 B의 남편임을 알게 된다. 그는 어떤 추억을 고를 것인가? 그런데 C가 골랐던 추억도 역시 늙어서 아내 B와 함께 공원에 산책하러 가서 담소했던 추억이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던 당신의 아내가 마지막으로 고른 추억이 당신이 아니고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라면? 주인공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화의 마지막에 이야기의 반전이 있었는데 C는 이미 아내의 고백을 통해 아내가 A를 더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사랑받았던’ 추억보다는 ‘사랑했던’ 추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자신보다 더 사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했던’ 아내와의 추억을 선택한다.


만약 여러분이 내일 죽는다면 어떤 추억을 선택할 것인가? 사랑받았던 추억을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했던 추억을 가져갈 것인가? 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 많은 분이 추억 한 개는 너무 적다고 해서 축구 토너먼트처럼 4강이나, 8강 후보를 골라서 가장 좋은 추억을 선택하도록 했다. 필자의 추억을 공개하자면 아이들, 아내, 부모와의 추억 순이었다. 왜 그런지의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는데 부모님에게 물어본 추억에서는 나에 대한 추억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나는 아이들을, 부모님은 나를 더 사랑했기에 더 많은 추억이 있었다. 그녀와 내가 혹은 아이와 내가 추억을 만들었지만, 추억은 나의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녀 혹은 아이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추억은 상대적이며 잊히기 쉽다. 그렇지만 추억을 함께 만들려는 노력, 함께 한 추억을 찾는 노력은 사랑의 동력이 된다.


오늘 친구들과 그동안 즐거웠던 추억을 회상해보기로 하자. 노트로 정리해서 타임캡슐처럼 10년 후에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내가 힘들 때 다시 읽어보면 아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추억들은 나와 상대가 함께 만들었으니 나의 것만이 아니다. 내가 없어져도 상대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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