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필수, 목표는 선택!-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배려는 필수, 목표는 선택!-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 취재팀
  • 승인 2022.05.24 14:06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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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벨랴코프(39) 방송인

 

Prologue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단지 수많은 선택지만이 우리를 기다릴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따라가며 살아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누군가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러시아에서 귀화해 한국인으로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비정상회담>의 출연진으로 유명한 일리야 벨랴코프(39) 방송인을 선릉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지 20년 차가 다 돼가는 일리야라고 한다.

 

▶ 극동국립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고등학교를 졸업 후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었다. 처음엔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했지만, 성적이 낮아 불합격했다. 다른 학과를 보며 어딜 지원할까 고민하던 중 블라디보스토크 특성상 강세를 보인 동아시아 어학과를 전공하려고 했다. 일본어학과에 지원하려고 했지만, 혹시 모를 불합격을 대비해 당시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했던 한국학을 지원했고 합격했다.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
당시 유일하게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내가 다니던 대학과 협약을 맺어 한국에 어학연수를 갈 학생을 뽑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합격하고 3학년 때 어학연수를 받으러 연세대 어학당에 처음 갔다. 총 1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와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렀는데 최고등급인 6급을 받았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으로부터 정부초청 장학생을 제안받아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석사 과정을 이수하러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박사과정을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석사 취득 후 다음 목표는 박사과정 이수였다. 그래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 사회언어학 박사과정을 이수하러 갔다. 하지만 내가 있던 남부는 매우 보수적이고 위험했다. 그곳에서의 일상생활은 늘 큰 불편함이 따랐고 무엇보다도 대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속한 사회언어학과에서 한국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교수님도 없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지지해주는 분들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 다양한 일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고 현재는 무슨 일을 하는가.
학생 시절엔 통·번역, 관광 가이드, 러시아어 사이트 운영 등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 후엔 ‘삼성전자’에서, 미국 유학 후에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료통역가로 일했다. 또한 교육과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했다. 처음엔 ‘에듀랑’에서 다음엔 ‘뿌쉬낀하우스’에서 일했다. 이때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수원대 외국어학부에서 러시아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하며 계속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대한러시안'과 `Полуостров'라는 `유튜브'도 운영 중이며 번역 활동을 하고 책도 집필 중이다. 

 

▶<비정상회담>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JTBC’ 측이 타일러 라쉬에게 먼저 연락했다. 그가 출연을 확정하고 얼마 후에 타일러가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면접을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출연하게 됐다.

 

▶ <비정상회담>에서 혐오주의에 관해 토론했던 장면이 큰 화제였다. 당시의 이야기 부탁한다. 
<비정상회담>은 대본이 없고, 흐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평소 촬영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토론하진 않았다. 하지만 ‘혐오주의’ 아이템은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너무 좋은 주제였다. 그래서 정말로 타일러와 제대로 된 토론을 시작했다. 실제 녹화 현장에서는 방송에서 나간 분량보다 더 오래 토론했고, 더 치열했다. 다른 출연진의 의견도 반반으로 크게 갈려 정말 치열하고 재미있었다.

 

▶ 교수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수원대 외국어학부의 한 교수님과 외부 행사를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분이 외국어학부 교수직을 맡을 의향이 있냐 물어봐 줬다. 늘 교수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서류를 제출했고 통과했다. 

 

▶ 교수로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지.
교수로서는 매 순간이 보람차다. 수업 중 학생들이 내가 가르치고 있는 주제에 진심으로 관심 가져줄 때와 학생들이 졸업하고 러시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성공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 개인적으로 느꼈던 한국 사회의 아쉬운 면은 무엇인가.
사회 자체에 화가 많다. 사람들 간의 배려가 좀 더 필요하다. 약자에 대한 혐오, 나보다 낮은 자에 대한 갑질 같은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가 여기서 기인한다.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를 조금만 더 늘려갔으면 좋겠다. 

▲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이 러시아 국기와 한국 국기를 양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중앙일보
▲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이 러시아 국기와 한국 국기를 양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중앙일보

 

▶ 귀화했다고 들었다.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다. 2015년에 귀화 신청을 했고, 2016년에 귀화 허가서가 나왔다. 한국에서 오래 살려면 비자 등급을 유지 시켜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관광객, 유학생으로서의 체류는 쉽지만, 장기 비자는 발급받기 어렵고 과정이 복잡해져 갔다. 한국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택할 방법이 귀화, 영주권, 결혼 세 가지였고, 당시엔 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 귀화한 후,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실감 된 순간은 언제였는지.
귀화 후 첫 해외여행 때였다.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출입국 카드를 작성할 때면 국적란에 항상 러시아라고 적었다. 첫 여행지가 일본이었는데 기내에서 승무원들이 출입국 카드를 나눠줬다. 국적란을 보고 거기에 대한민국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제는 내가 정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체감됐다.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딱히 목표는 없다. 사실 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바라보고 달리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놓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은 많다. 다양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싶고, 책도 쓰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목표는 아니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두 글자는.
‘진화’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진화가 집단의 진화를 그리고 국가의 진화를 불러올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부탁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면 한다. 많은 젊은 층이 ‘나는 공부를 잘해야 하고 졸업하자마자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아파트를 사고 결혼해야지’와 같은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가 바라는 그런 삶을 꾸리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니 사회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파악했으면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키려는 태도는 버렸으면 한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Epilogue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목표라는 틀에 속박된 걸지도 모르겠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한가지 길에만 목맨 것은 아닐까.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됐다. 그의 말처럼 목표로부터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뿐인 인생 조금은 편하게 즐겨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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