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은행나무와 요즘 사람들
<백묵처방>은행나무와 요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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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2.16 00:20
  • 호수 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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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올해도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천안 캠퍼스의 명물인 은행나무 단풍도 하룻밤 모진 바람과 한 낮의 눈보라에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곱디고운 단풍을 보려면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나무를 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아마 20년 전 학교 동산에 나무를 심을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교정이 되리라 상상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보기 좋은 큰 나무가 되기까지 수많은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한 그루의 나무심기를 주저하지 안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매우 조급한 것 같다. 도통 기다릴 줄을 모른다. 옛날 사람들 같이 어린 묘목을 심어서 수해동안 정성스럽게 가꾸려 하지 않는다. 다 자란 나무를 옮겨 심어 당장 열매를 따먹으려 한다. 참으로 재미없는 세상이다. 아마 인스턴트 식품에 오염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작은 묘목을 심어서 매일 자라나는 과정을 살피노라면 성장의 오묘한 비밀에 자연스럽게 감탄이 나온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다리자.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오죽하면 백년대계라 하지 않았나. 나무를 심고 당장 열매를 따먹을 수 없듯이 교육도 당장 결과를 만들 수가 없다. 그리고 좋은 열매와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투자하고 기다려야 한다. 당장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고 나무를 캐낸다면 언제 열매를 맛볼 수 있는가.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투자를 게을리 한다면 언제 훌륭한 인재를 만들 수 있겠는가. 설령 우리 시대에 그 열매를 따먹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따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요즈음 사람들은 <그러므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투자를 안 한다. <그러므로> 회사가 이 모양이다”. “저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한다. <그러므로> 저 사람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러므로>도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필요한 것 같다. 필자가 학부시절 <그러므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라고 하자 은사 선생님들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가르쳐 주셨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냄새가 지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를 잘만 쓰면 유익한 점이 매우 많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이놈도 밉고 저놈도 미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이것이 좋고 저 녀석은 저것이 좋다 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불평불만만 늘어놓지 말고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해 보자. 그래야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지 않겠나. 또 불평불만만 널어놓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평불만자가 되어 버린다. 마치 소금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적당한 양이 있어야 하듯 불평불만도 적당한 수준에 그쳐야 한다. 소금이 반복되고 양이 많아지면 독이 되는 법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생기가 안보이고 풀이 죽어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왜 그렇게 사냐고 물어보면 희망이 안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사람에게서 희망이 없어지면 인생의 재미가 없다. 유학시절 가족과 떨어져서 힘들었을 때도 다음에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참을 수가 있었다. 당장 배고파 어려워도 참을 수 있는 것은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가 한 겨울 모진 바람을 참는 것도 다음 해 봄이면 새싹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특별히 한 조직이나 회사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비록 그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적더라도 희망을 안겨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장밋빛 환상 속에서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수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오늘 하루도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당장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하게 살지는 말자. 희망을 가지고 느긋하게 살자. 당장 어렵더라도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좀 참고 살자. 그리고 이 세상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만 살수가 없다. 미운 놈이던 고운 놈이던 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미워도 모르는 사람보다 낳지 않은가. 교정의 은행나무는 내년 봄이면 다시 파란 잎새를 내밀고 힘차게 한해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면 노란 단풍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이성규 인문과학대학/어문학부/몽골어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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