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며 상실의 순간을 겪는다면
살아가며 상실의 순간을 겪는다면
  • 서다윤 기자
  • 승인 2023.03.07 16:02
  • 호수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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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문학 – 구병모『파과』

※ 이 도서는 기자의 주관적인 추천 도서입니다.


출판사 위즈덤 하우스

출판일 2013.07.22

페이지 p.387

※ 퇴계기념중앙도서관 보유

※ 율곡기념도서관 보유

 

파과란 흠집이 난 과일(破果) 혹은 여자의 나이 16세를 이르는 ‘파과지년’의 줄임말(破瓜)을 의미한다. 유독 작가는 파과의 의미를 복숭아에 빗대 묘사했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인 조각(爪角)의 이야기는 단순히 흠집이 난 과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손톱'이라는 이름으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았다. 칭송받았으나 이제는 퇴물 취급과 은퇴를 종용받는 60대 여성 킬러다. 그런 그에게는 하나의 신조가 있었다. 바로 ‘지켜야 할 것을 만들지 말자는 것.’ 그러나 신념과 달리 이 책에는 살아 있는 것들의 빛나는 순간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 그 또한 빛나는 순간이 있었음을 깨달은 조각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p.332

‘조각’은 집, 인연, 자신의 아이까지 상실하는 삶을 살았다. 희로애락, 특히나 여성으로서의 행복과도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를 철저한 고독 속에 가뒀던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마주하고 슬픔을 느끼게 된다. 이는 파과처럼 부서져 가는 삶의 소멸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자신의 업이자 과거의 비틀린 인연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인연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전투도, 진심어린 감정의 전달도 있었다.

모순적이게도『파과』는 흠집이 난 과일(破果)과 빛나는 순간(破瓜)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파과는 조각이 난 조각(爪角)의 삶이다. 이에 기자는 파과일지언정, 조각이 난 채 주어진 삶을 기꺼이 살아가겠노라는 생각이 비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소 호흡이 긴 문장들의 연속이나, 장황하지 않았기에 책장을 넘길수록 몰입감이 남달랐다. 평소 우리가 접하기 힘들었던 우리말들도 이야기 곳곳에 자리해 있다. 강렬한 여성 서사를 선사한 이 책은 지나간 삶을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상실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다.

서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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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yoo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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