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끼, 변하지 않는 소중함
하루 한 끼, 변하지 않는 소중함
  • 이다경·구예승·서다윤·송주연 기자
  • 승인 2023.03.21 16:55
  • 호수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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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급식소

Prologue
한 끼 식사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어느 정도일까? 흔히 인간이 겪는 고통 중 최고의 고통은 배고픔이라고 말하곤 한다. 밥을 먹는다는 것, 즉 한 끼 식사는 우리 삶의 원동력이자 행복의 근원이다. 가파른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더 가치 있는 한 끼를 만들어 행복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 각지에 있는 무료 급식소들이다. 기자는 삭막해진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노력에 동참하고자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으로 향했다.


‘따뜻함을 전하던 이들’의 위기

흔히 즐겨 먹는 냉면과 짜장면의 가격이 1만원과 7천원을 넘어섰다. 참치통조림, 수프, 참기름 등 다소비 가공식품의 가격도 전월 대비 10%에 가깝게 올랐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생활물가지수는 112.19로 1년 전보다 5.87% 증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 또한 110.38로 1년 전에 비해 5.08% 올랐다. 이는 소비자가 구매하는 생필품을 비롯해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 과일, 수산물들을 비롯해 가공식품까지도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물가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는 한편 전체 노인인구 중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 16%에서 2022년 20.8%로 꾸준히 올랐다. 이들 중 대다수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 급식소를 찾는다. 무료 급식소는 이처럼 독거노인, 노숙자와 같은 어려운 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취약 계층에게 한줄기 마지막 희망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공공요금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물가 상승에 경기마저 침체된 상황에 무료급식소의 빛도 희미해져 가고 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토마스의 집’ 이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토마스의 집’ 이다.


서울시에서 찾는 인구가 제일 많은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은 영등포 쪽방촌과 맞닿아있다. 급식소 모퉁이를 돌면 바로 보이는 쪽방촌에는 500가구가 넘게 살고, 그들 중 독거노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토마스의 집은 서울시에서 제일 열악한 환경에 속한다.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만으로 운영하지만, 물가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해 투자마저 미미해지는 상황이다. 

 

온기가 머무르는 공간

아직 겨울의 한기가 다 가지 않은 2월의 오전 10시, 입구부터 가득 쌓인 쌀 포대가 기자를 반겼다. 문지방을 넘어 발을 디딘 내부는 작고 협소했고, 세 개의 테이블에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총 네 명 정도의 봉사자가 더 도착하니 자리를 잡기에도 애매했다. 기자는 앞치마를 착용하고 미리 식판에 반찬을 담아 두는 업무를 도왔다.

 

기존에도 봉사를 해왔던 자원봉사자 최형우(가명·53)씨는 “반찬을 너무 많이 담지 말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져 물어보니 그는 “식사를 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고, 음식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음식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자의 편견 아닌 편견에 금이 갔다. 젖은 행주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식탁에 식판과 수저, 물이 든 컵을 배치하는 작업까지 마치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 기자들이 급식 봉사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 기자들이 급식 봉사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오전 11시가 되고 급식소의 문이 열리자, 그 너머로 길게 늘어진 줄이 보였다. 당황할 새도 없이 쏟아지는 급식소의 손님들을 마주했다. 낡아 보이는 빛바랜 옷과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머리카락의 행색이 모두 비슷해 보였다. 빈자리에 식판을 두고, 물을 따르고, 숟가락을 놓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식판을 옮겼다. 배식한 뒤에도 ‘밥을 덜어달라’, ‘고기를 먹지 않는다’, ‘국을 더 달라’는 등 요구사항이 휘몰아쳤다. ‘물을 더 달라’고 할 때면 미리 따라놓은 물이 다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눈치를 보면서 움직였다.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휘청휘청 일렬로 세워놓은 컵에 물을 따를 때면 마음이 불안해지기 일쑤였다.

 

음식물이 튄 식탁을 닦고 식사를 가져다 놓는 것까지 자원봉사자의 일이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젖은 행주를 꺼내 닦으면, 귀신같이 누군가가 식판과 수저를 들고 왔다. 서로 한 몸이 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느끼다 보니 긴장으로 가득 찼던 기자도 한결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많은 인원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 많은 인원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좁은 장소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자원봉사자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책상과 책상 사이를 지나가려다 동선이 겹쳐 부딪히는 일도 있었다. 국이 바닥에 엎어져 급하게 닦으면서도 동선이 꼬이지 않을지 걱정해야 했다. 때때로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높아질 때가 있었고, 다 먹은 식판을 설거지통에 놓는데도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오늘이 첫 봉사인 기자는 고전을 이어갔다.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반찬을 덜어주다 보니 손에 감각이 없을 지경이었다.

 

동행의 가치

한바탕 폭풍처럼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마무리 청소를 끝마친 기자는 토마스의 집 박경옥(63) 총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29년간 무료 급식소 봉사를 해온 박 총무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급식소 식재료 준비에 어려움을 토로하며 “식재료를 비롯해 모든 가격이 코로나19 전보다 가격이 30%가량 상승한 상황으로 인해 이전엔 약 400~500인분 준비할 수 있던 예산으로 지금은 절반밖에 준비하지 못한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질보단 양적인 측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후원금과 식재료 후원이 충분하지 않은 지금 특식 제공도 여의찮다. 그는 “떡국을 연초, 연말에 특식으로 드리는데 지금은 후원이 충분치 않아 예전에 들어왔던 후원을 아꼈다가 쓰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박 총무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가 ‘사랑, 나눔, 베풂’이 힘이 되는 세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소외된 사회구성원을 챙기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박 총무의 소망과 더불어 토마스의 집 자원봉사자들 모두 미소를 띠며 동행의 가치를 이뤄내고 있었다.


고물가 시대에도 맛있는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모인 마음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기자는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 대부분 봉사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필요한 세상에서 무료 급식소는 사람들에게 정겹고 따듯한 식사를 제공하며 사회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한 끼를 지켜나가는 일

 

▲  점심시간이 되기 전, 미리 준비한 밥상이 줄지어 놓여져 있다.
▲ 점심시간이 되기 전, 미리 준비한 밥상이 줄지어 놓여져 있다.

 

기자는 식사를 마치고 뒷문으로 나가는 손님에게 물가 인상으로 인한 식사 변화에 관한 질문을 건넸다. 토마스의 집에서 식사를 마친 박병호(가명·71)씨는 “물가가 올라서 운영이 힘들다고 하지만, 방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바뀐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항상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크다”는 의견을 밝혔으며, 다른 손님에게도 변화를 느끼기보단 밥을 준비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답변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도 무료 급식소는 굳건하게 한 끼의 식사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웃으며 감사의 말을 전하는 대부분의 손님을 맞다보니 기자는 마음이 보람으로 가득 찼다. 간식을 받아 가는 분과 봉사자분의 유쾌한 대화까지 들어보니, 차들만 쌩쌩 달리고 있는 삭막한 대로가 정감으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Epilogue
무료 급식소가 정부의 후원을 대신하는 선택지는 직접 발품을 팔아 부탁하는 방법뿐이다.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급식소의 사정도 개선돼야 할 필요는 분명하다. 일례로 작년 포항시의 무료 급식소 1인당 한 끼 지원금은 2700원이다. 변동 없는 금액을 지원받으며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정부의 현실적인 예산 확대가 필요한 지점이다. 비록 물가 상승과 후원 감소로 인한 어려움에 부닥친 무료 급식소이지만 이름 그대로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단순히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한 끼를 통해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사랑의 급식소였다. 그 사랑이 앞으로 쭉 이어질 수 있도록 보다 많은 후원과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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