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짚고 자유의 품으로… 통일 미래에 도움될 터”
“목발 짚고 자유의 품으로… 통일 미래에 도움될 터”
  • 구예승 기자
  • 승인 2023.05.09 14:55
  • 호수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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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호(41) 국회의원
북한 정권은 `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갈망
이들이 겪는 고통과 인권에 관심 필요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인 북한. 한쪽 다리와 팔을 잃고도 북한에서부터 오로지 자유를 찾기 위해 약 1만 킬로의 여정을 달려온 사람이 있다. 그 후에도 탈북민 등의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와 구출 등에 힘썼으며, 현재는 국회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지성호 국회의원(국민의힘)을 만났다. 

출처: 일요시사
출처: 일요시사

-자기소개 부탁한다.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이다. 2006년도에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왔으며, 현재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다.”

 

- 북한에서의 삶은 어땠나.
“함경북도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북한은 당국의 허락 없이는 인근 지역도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윗세대부터 쭉 탄광촌에서 살아왔다. 내 고향에서는 일을 해도 먹을 것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 사람들은 열차에서 석탄을 훔쳐 팔면서 옥수수 같은 먹을 것을 구했다. 나 또한 그렇게 먹을 것을 구했는데, 그러다 실수로 열차에서 떨어져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 사고를 당한 후에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었는가.
“병원에 가도 일반 사람에게는 의약품을 제대로 처방해 주지 않아 마취제 없이 고된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3시간 반 동안의 수술을 눈 뜬 상태로 버텨냈다. 가족들마저도 죽음을 생각했을만큼 심각한 상황이었고 수술 후에도 항생제를 처방받지 못해 온갖 염증에 시달려야 했다.”

 

-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식량을 구걸하기 위해 중국으로 잠시 몰래 넘어갔던 적이 있다. 그때 우리가 겨우 벌어먹는 옥수수를 가축들이 먹고 있고, 모든 사람이 살쪄 있는 모습을 보고 북한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가족들에게 식량을 전달해 주기 위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언젠간 자유를 찾아 탈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그 과정은 어땠는가.
“한 마디로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목발을 짚고 두만강을 헤엄쳐 중국으로 갔지만, 중국에서 바로 한국으로 갈 수는 없었다. 중국에서 잘못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이송을 당하면 바로 처형이었기에 돌아가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결국 중국을 횡단해 동남아 쪽으로 향했다. 힘들게 라오스, 미얀마, 등을 거쳐 결과적으로 태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과정은 어땠는가.
“처음에는 외교부에서도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목발을 짚고 넘어왔다는 사실에 놀라며, 나를 먼저 한국으로 이송시켜 줬다. 정부에서 의족과 의수도 제공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세상을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북한은 인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신기했다.”

 

- 탈북자로서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러나 한국말이 서툴러 처음에는 뉴스도 절반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간판의 뜻을 몰라 헤맨 적이 많았다.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기뻤으나, 내가 무식하면 그것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 이후 북한 인권 단체인 NAUH(Now Action & Unity For Human Rights)를 설립했는데, 그 계기는.
“언젠가 통일이 이뤄진다면, 북한 국민들이 우리가 굶어 죽어 갈 때 당신은 대한민국으로 가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그때,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돼 통일 이후의 미래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아무래도 위기에 처한 북한 국민들을 살려낸 경험들이 기억에 남는다. 탈북 이후 중국의 지방에 강제로 갔던 여성 500여 명, 북송을 앞둔 탈북민들 200여 명 등을 우리나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돈을 쫓아가는 삶이 아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쫓는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 지성호 의원이 ‘2018년 미국 대통령 국정 연설’에서 연설을 한 뒤 박수를 받고 있다.
▲ 지성호 의원이 ‘2018년 미국 대통령 국정 연설’에서 연설을 한 뒤 박수를 받고 있다.

 

- 정치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탈북민으로서 진행한 활동들이 국제사회에 좋게 비쳐 미국의 백악관에서 연설도 하며 북한 인권을 위해 시위하고 싸웠다. 그러다가 입당 제의를 받게 됐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이후에 탈북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입당하게 돼 국회의원까지 됐다.”

 

- 북한 인권 단체 NAUH 대표로서의 삶과 국회의원으로서 삶의 차이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탈북민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이젠 모든 국민의 삶의 개선을 위해야 한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NAUH의 대표로 있을 때처럼 탈북민 구출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 대신 잘못된 법과 제도를 바로잡고 새로운 것을 건의할 수 있다는 기회에 집중하고 있다.”

 

- 북한 인권과 탈북민을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들은 정확하게 갈라서 생각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자유를 갈망한다. 이들의 겪는 고통과 인권에 관심이 필요하다.”

 

- 앞으로의 목표는.
“나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주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손길들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통일이 왔을 때 앞장서서 남북한의 화합을 이끄는 밑거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북한에서부터 나와 함께했던 ‘목발’이다. 목발은 내 정체성이며 나를 언제나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게 될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과 북한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산다는 것은 숨을 쉬고 있으나 희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했으면 좋겠다. 물론 청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가 달려온 것처럼 우리도 긍정적으로 달려가 보자고 말하고 싶다. 나 또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구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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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eseung@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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