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난·슬램덩크 목소리 주인공… 현실감 있는 연기가 소신”
“코난·슬램덩크 목소리 주인공… 현실감 있는 연기가 소신”
  • 서다윤 기자
  • 승인 2023.05.23 14:25
  • 호수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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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59) 성우
하고싶은 건 개성 강한 조연
언제나 진정성 있는 연기하고파
본인만의 순수함을 간직하길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TV를 켜는 게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일과였다. “왼손은 거들 뿐”, “진실은 언제나 하나!”, “나는 해적왕이 될 거야!”. 집에 TV 하나쯤 있었던 남녀노소라면 이 대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될 것이다. 모두 인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슬램덩크’ 강백호, ‘명탐정 코난’ 남도일, ‘원피스’ 루피의 명대사다. 그림은목소리를 얻어 살아 움직인다. 목소리로 우리의 추억에 색채와 명암을 부여하고, 생동감을 불어넣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준 ‘주인공’ 강수진(59) 성우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88년도, 23세에 데뷔해 37년 차가 된 성우 강수진이다.”

 

- 상당히 어린 나이였다. 성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본래 성우가 꿈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를 자주 들어서 친숙한 직업이었다. 대학에 와서 의외로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고, 졸업을 앞두고 KBS 공채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그렇게 성우가 됐다.”

 

- 성우 경력 37년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다면.

“최근에 행사가 하나 있었다. 공연을 관람한 부부가 와서 시각장애가 있는 딸이 팬이라고 하더라. 특수학교에서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해 응원 메시지를 남겨줬다. 그로부터 며칠 뒤 메일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며 농구 골대에 슛을 계속 던지는 영상을 받았다. 의외로 이런 사소한 응원의 말들이 기억에 자주 남는다. 내 연기로 사소한 듯 보이나 사소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보람을 느끼는 한편 부담도 느낀다. 그러다보니 이 일이 마냥 사소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 강수진 성우가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인기 만화 `슬램덩크'의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수진 성우가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인기 만화 `슬램덩크'의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주요 역할을 많이 연기한 만큼 팬들로부터 연기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계기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첫 번째는 팬이다. 두 번째는 시기다. 우리나라 미디어 환경이 80·90년대부터 급변했다.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목소리로 연기할 기회가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운이 좋았다. 감성이나 톤은 타고나야 하는데, 내가 그렇다.”

 

- 연기에 있어 무엇을 최우선으로 삼나.

“패턴화되지 않고 현실감 있는 연기를 하자는 게 소신이다. 사람들은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주 본다. 그러나 일본의애니메이션 연기만이 정답인 것도, 본질인 것도 아니다. 쉽게 그 패턴을 따라가지 않고 연기라는 본질적인 부분을 챙기려고 한다.”

 

- 성우는 직업적으로 익숙한 직업은 아니다. 일을 받는 과정이 궁금하다.

“공개 오디션은 특별한 경우다. 물론 오디션 없이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성우계는 성우 개인에게 직접 오디션 섭외를 하기도 한다. 한 캐릭터당 적을 때는 두세 명, 많을 때는 열 명까지다. 사실 나는 오래된 작품들을 주로 하다보니 오디션 기회가 별로 없다. 신작에서는 경력과 나이 탓에 배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젊고 감각적인 성우를 요구하는 제작자들이 많다. 물론, 후배들에게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다.”

 

- 항상 최신 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다.

“내 직업은 특히 ‘MZ’라고 불리는 10대들과 밀접하다. 그렇기에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외면당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늘 Z세대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취향을 알고자 한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나오는 방송을 시청하며그들의 언행을 채집하기도 했다.”

 

-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직업인으로서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가치가 인정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적, 경제적 가치가 인정되고 대중화됐으면 하는 바람에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개성 강한 조연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직접 콘텐츠 제작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성우 사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크라우드 펀딩 구조 자체가 성우 산업의 확장과 성장 동력을 갖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대중화가 가능한 플랫폼,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 최근 걱정거리가 있다면.

“AI 기술의 발달이다. 오디오뿐만 아니라 비주얼까지도 만들어 낸다. 성우 역시 AI가 대체할 테니 불필요성을 논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작업물의 바탕이 되는 소스를 함부로 공유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독창성을 가진 사람이 중요하다. 성우로서의 위상과 본질적 가치가 높아지고, AI 기술에 경각심을 가진다면 AI가 함부로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 오리라 믿는다.”

 

- ‘강수진 성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소신대로, 현실성과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던 성우로 기억됐으면 한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를 바라보는 나. 내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것도 결국엔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항상 나를 봐주는 나와 함께하고 싶다.”

 

- ‘순수하고, 철없어지라’는 명언도 남겼다. 취업 준비, 사회생활 등으로 순수함을 찾기 어려워진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모순되게도 사회인으로 발돋움하려면 순수를 감춰야만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본인의 순수함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때때로는 순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게, 언제든 쉼을취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두길 바란다. 그것이 애니메이션이 됐든, 무엇이 됐든.”

 

 

유년 시절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던 그는 이제 사람의 목소리가 가진 다양한 가치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고, 매체가 발전하는 동안에도 추억은 쌓인다. 강 성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도 아름다움을보게 해주며 목소리로 모두의 추억을 그려왔다. 누구든, 언제든 순수함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그는 영원한 철부지로 남기 위해 오늘도 진심을 연기한다.

서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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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yoo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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