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사업의 두 얼굴…대학의 ‘지성’은 침묵을 깨라
정부 재정사업의 두 얼굴…대학의 ‘지성’은 침묵을 깨라
  • 단대신문
  • 승인 2024.06.04 14:17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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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  생태계 악화  경쟁력 추락
정부 사업, 저출산 대책의 ‘데자뷔’
고등교육재정 GDP의 1% 이상 필요
대학의 셀프 혁신과 책무성도 절실

대한민국의 대학은 산업화와 근대화, 민주화와 글로벌화의 격동 속에서 국가 경쟁력의 엔진인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아 왔다. 그런 노력에도 국내 대학은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평가 결과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평가 대상 63개국 중 49위에 머물렀다(2023년 기준). IMD가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63개국 중 28위로 매긴 것과 비교하면 대학 경쟁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왜 그럴까. 한국의 대학은 재정난 가중→교육여건 악화→국제 경쟁력 추락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이 정부의 얄팍한 재정지원과 각종 규제에 종속돼 온 탓이다. 물론 대학의 책임이 크다. 대학이 ‘재정의 노예’가 되어 자율과 혁신의 야성을 잃고 수동형 교육기관으로 변질했다. 문명사적 대전환의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고 학령인구 감소에 능동적으로 대비하지 못해 자생력을 잃었다.

 

사회 풍토 또한 자성의 대상이다. 대입 위주, 공급자 위주, 학벌 서열화의 그늘이 짙다. 최근에는 의대와 무(無)전공 이슈로 대입이 요동치고, 학벌 서열화와 사교육 망령이 심화하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지식 사회는 침묵한다. 최고 지성인 총장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부 눈치만 보는 듯 대학 정책에 대한 소신 평론을 꺼린다. 안타까운 대학의 자화상이다.

 

사실 정부는 대학을 돈으로 옥죌 자격도 없다. 우리나라 학생 1인당 고등교육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대비 67.5%에 불과하다. ‘정부지출 대비 고등교육 지출 비율’은 2016년 2.9%→2020년 2.4%로 계속 감소세다. OECD 38개국 중 고등교육 1인당 교육비가 초중등보다 적은 곳은 우리나라와 그리스뿐이다. 제22대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역대 정부는 대학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여러 사업을 진행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학구조개혁(2004), 이명박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추진 기본계획(2011),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2015), 문재인 정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2018, 2021)이 대표적이다. 약발은 미약했다. 대학 교육역량 강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 육성, 지방대 특성화, 국립대학 육성, 대학혁신 지원 등 각종 사업이 경쟁력을 높였나. 국민 혈세를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나눠준 모양새다. 380조 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쓰고도 출산율이 0.6명 대로 주저앉은 저출산 대책의 ‘데자뷔’ 같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대학 활성화와 지역균형 발전을 내걸고 ‘글로컬(Glocal) 대학’과 ‘라이즈’(Rise, 지역혁신 중심대학 지원체계) 사업을 진행 중이다. 도드라진 특징은 교육부의 재정 배분 방식이 바뀌는 라이즈사업이다. 교육부는 재정지원의 권한과 예산을 광역자치단체에 넘길 계획이다. 사업 첫해인 2025년에는 교육부 대학재정 사업 예산의 50%인 ‘2조 원+알파’에 대한 집행 권한을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이양한다. 

 

미국 연방정부의 형태를 본뜬 이 사업은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 대학 입장에선 교육부에 더해 지자체 ‘시어머니’가 더 생기는 격이다. 선출직인 단체장이 ‘돈주머니’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교육부는 “그럴 일 없다”라고 하지만, “이미 지자체 공무원의 ‘완장’을 체감하고 있다”라는 게 대학인의 공통된 전언이다. 자치단체의 전문성 부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차라리 ‘문외한(門外漢)’에 대학을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고등교육 패러다임 전환은 지성의 자율과 책무가 그 기본이어야 한다. 정부가 쥐꼬리만 한 재정으로 무전공 인센티브까지 내걸고 대학을 길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고등교육이 엘리트 교육을 넘어 대중 교육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최소한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으로 고등교육재정을 확보하고, 초중등에 기울어진 지방재정교육 교부금의 균형추를 맞추는 일이 시급하다. 초중등 교육은 결국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기 위한 디딤돌인데 최정점인 대학의 궁핍을 언제까지 방관할 셈인가. 

 

전국 대학의 총장들을 중심으로 대학 사회가 입을 열어야 한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비겁함이다. 교육부의 ‘돈다발’에 손사래 치며 지성의 본령을 되찾아야 한다. 뼈를 깎는 대학의 ‘셀프 혁신’과 ‘책무성’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글로벌 대학은커녕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미래도, 젊은 세대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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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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