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연구를 업으로 삼고 특히나 인문학 연구를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아주 많이 구매하는 편은 아니다. 학교 도서관도 꽤 잘 돼 있고 신간 구입 신청, 캠퍼스 간 대출, 외부 기관 상호대차 등의 시스템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연구실 서가에 책을 쌓기보다는 여유 있게 비우고 신간 위주로 구비하되, 도서관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주의로 서가 정책을 바꿨다. 안 그래도 출판 시장이 어렵다는데 학문을 하는 사람까지 책을 덜 사면 어쩌느냐고 묻겠지만, 한국인들의 독서 통계에서 평균을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하는 편에 속하니 죄책감은 덜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매년 <독서 실태 조사>를 해 통계를 발표한다. 올해 발표에 따르면 작년 성인 60%는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종이책, 전자책 포함). 지난 10년 사이 성인 독서율(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비율)은 71%에서 43%로 급전직하했다. 책을 구매하는 평균 구매 권수 역시 연간 1권에 불과했다. 그럼 우리나라의 책과 출판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는 것일까? 출판사와 서점을 먹여 살리는 건 청소년 인구와 그 부모라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책을 사는 것에 신중해진 대신 더 자주 하게 된 일이 온라인 서점에서 ‘서핑’을 하는 일이다. 온·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는 주된 목적이 순전히 ‘구경’을 위해서인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도서 정보를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편인데, 놀라운 것은 책들이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챗 GPT 열풍에 검색해 보니 챗 GPT라는 표제가 담긴 책만 올해 8개월간 300여 종이 발간됐다. 인문학 중에서도 역사 분야는 출간 도서가 원체 많은 편이지만 같은 기간 1,000종이 넘는 책의 리스트가 나타났다. 도서 구매 평균 권수가 1권인 나라에서 이 정도면 눈앞이 어질어질해 질 정도이다.
여기에는 ▶1인 출판 붐 ▶다품종소량생산 ▶국가의 도서 보급 및 도서관 정책 ▶전자책 플랫폼의 인기 등, 이 지면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원인과 배경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어지러운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일 터이다. 우리 학생 중에는 실제로 책을 만드는 데 흥미를 가지거나 서점에서 일하는 것을 즐기는 친구들도 많다. 누군가는 책에 끼워 파는 굿즈가 탐나 책을 사기도 하고 전자책으로만 책을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책값이 높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의 퀄리티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니 저마다의 방식으로 책과 서점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틈이 나는 대로 힘이 닿는 데까지 이 휘황찬란한 책들의 세계를 헤엄치고 둘러보길 권한다. 이 시절이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알 수 없으므로.
김미지(국어국문)교수 dkdds@dank00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