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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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현 우
  • 승인 2004.05.21 00:20
  • 호수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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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우 교수<의과대학·정신과학>

가정의 달에만 생각하는 가정폭력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푸르고 맑고 아름답다. 해서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해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다짐도 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은 정말 잘하는 일이 되겠다.
그러나 가정의 달에 가정폭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가정은 인간사회적 삶의 가장 기본적 단위로서 인간의 육체적, 정서적 욕구에 대한 배려를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하면 지쳐서 돌아와도 늘 따뜻함이 있는 곳이 가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 주위의 가정에 따뜻함만이 있는가. 아니 따뜻함은 고사하고 폭력이 없는 가정이 대부분일까. 유감스럽게도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가정이 그리 많지 않다는 보고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더구나 폭력이란 말을 신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 까지 확대해 놓고 보면 더욱 그렇게 된다.
가정폭력은 물론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아동학대가 다른 나라보다 두드러진다. 이혼이 많다보니 계부?계모가 많은 탓이라고들 한다. 학대에는 신체적?정신적 폭력 외에 성학대도 포함되는 데 이런 현상이 많아지자 미국 정부에서는 아동학대를 아예 1급 범죄로 분류해서 다루고 있다. 살인이나 국가기밀 누설과 같은 정도의 범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가정폭력에 대해 ‘사춘기에 있는 자녀가 부모 또는 조부모를 포함하는 가족원에게 행하는 폭력’이라고 정의하듯 흔히 중3이나 고1이 되는 외아들이 학교가기를 거부하면서 어머니나 할머니를 때리는 경우가 전형적인 예가 된다.
이렇게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가정폭력이 형태는 다르나 어느 문화권에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고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 사회문화 환경이 좋든 싫든 미국이나 일본을 뒤쫓아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매 맞는 아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져 왔고 ‘집안일이니까’라는 이유로 주위에서 모른척했으며 설사 노출이 되더라도 당사자는 ‘집안일인데 웬 상관이냐’는 논리로 문제 삼는 걸 피해가곤 했기에 정확한 빈도를 알기 어려웠고 알더라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여성의 전화’나 정신과에 입원까지 한 ‘구타당하는 아내’같은 현장 조사에 의해 이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문제화 되어 왔다. 이들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정의 거의 절반에서 남편에 의한 구타가 있고 술 먹고 와서 폭력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으며 이들은 종종 아내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때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맞는 아이들은 그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문제도 문제겠지만 ‘며느리 늙어 시어머니 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나중에 성장해서 아이를 갖는 경우 어렸을 적 고통을 생각해서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아이들을 때리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정폭력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정폭력에 대한 보고를 조금 더 살펴보면 가정에서 일어나는 신체적·정신적 학대와 성적학대 등 이른바 아동학대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노인학대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는 일본식 가정폭력과는 다소 다른 현상으로 수명의 증가 등으로 인해 노인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에 따르는 것으로 그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매 맞는 남편이 증가한다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엄살이겠지’하고 웃어넘길 일이 아닌 것이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생각해 보면 엄살만은 아닐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형태의 가정폭력보다 ‘매 맞는 아내’문제가 아직은 우리나라 가정폭력에서 가장 중요하며 또 다른 형태의 가정폭력은 ‘매 맞는 아내’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예컨대 매를 맞는 아내가 시부모를 제대로 모시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매 맞는 아내’ 문제에서 꼭 짚고 갈 점이 두 가지 있다고 본다.
하나는 학력과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소유하므로 구타가 적을 것으로 들 생각하나 여러 보고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아내구타’의 해결이 법적 조치, 공동사회 노력 등으로 일부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부부 상호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기본과제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가정의 달에 가정폭력을 생각하는 아이러니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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