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초겨울 밤의 꿈
<백묵처방> 초겨울 밤의 꿈
  • 이재석/교양학부/교수
  • 승인 2002.12.25 00:20
  • 호수 10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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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아 곧 한국 현대 정치사의 한 장을 마감하게 된다. 내년 이맘 때쯤이면 우리 정치의 모습이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21세기를 들어 처음 선출되는 다음 대통령은 이런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 보게 된다.
대화를 소중히 여기는 분이었으면 한다. 나라 일의 범위가 넓어지고 사업이 다양해져서 대통령이 참석하게 되는 행사가 하루에도 여러 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각계 각층의 인사들과 얼굴을 대하게 되는데, 공식적인 성격을 띠는 이런 자리에서 연설하는 대통령과 참석자들과의 대화는 자연히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걱정되는 것이 대통령이 사람은 많이 만나지만 대화는 깊이 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각료회의도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지시와 보고가 주된 내용이 된다면 국정문제에 대한 논의 내용이 제한 된 것은 쉬 짐작할 수 있다.
야당 지도자와 재야 인사들과의 접촉에서도 언론의 카메라를 지나치게 의식하면 진솔한 대화를 이루어내기 힘들지 않을까. 많은 행사에서 연설하고 각료회의에서 지시하고 매체 효과를 염두에 두고 야당인사의 말을 주고받자면 사전에 비서실에서 작성한 연설문이나 소위 ‘말씀자료’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비서실의 자료와 정보, 논리체제의 범위를 넘어서 국민, 정부의 각 부처, 야당과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국정을 원활히 수행해 나가려면 국민과 지도자간의, 행정 기관과 청와대간의 그리고 여·야간의 신뢰가 구축되어야하고 이는 일방의 의견에 대한 논리부과가 아닌 쌍방간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하여 가능하다. 국민생활 현장으로부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정 일선으로부터의 경험을 신중히 저울질하고 그리고 야당과 지혜를 모아 내외의 여건을 헤쳐 갈 수 있으면 한다. 자기 당이나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반대당 비판적 인사들과도 진솔한 대화를 하는 문화를 우리 정치에 정착시키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여·야가 나라 일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구도를 짜 나간다면 얼마나 신명 나는 정치 판이 되겠는가. 힘을 모아야 나라의 일을 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불건전한 요소를 걷어내는 일은 여·야간의 협조 없이는 무리이다. 교육정책에 있어서 일선 교육 기관의 경험과 지혜를 최대한 살려 교육 소비자들에게 시대에 부응하는 최선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개선하는 일은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개발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대입 수능시험결과 발표를 며칠 앞두고 공교육 정상화 문제가 우리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야가 지혜를 모으고 국민의 마음을 사야 실효 있는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이다. 모두 장기, 거시적인 관점에서 대화와 신뢰구축의 정신으로 정책 관리가 필요한 일들이다.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노력은 대외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대북 관계에서 우선 당면한 문제를 보더라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북 3자가 수용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 그리고 북한의 정책 당국자와 신뢰를 구축하여야 이 바탕 위에서 우리의 희망을 상대방의 정책 방향에 반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화해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한·미간 정책을 조율하는 일은 이해 당사국들의 뿌리 깊은 관념 구조와 관련된 문제여서 다각적인 외교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임기 내에 많은 목표를 완수하려고 욕심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을 보면 2,3 년 혹은 5년 안에 해결 지울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자기 임기 동안 가시적인 업적이 있었노라고 국민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 같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은 어쩌면 정치가로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욕심 같기도 하지만 흔히 이것이 자기의 마음에 드는 후게자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은 유혹과 연결되어 무리를 낳은 경우가 있다. 이런 유혹에 빠지게 되면 여·야간, 지도자와 국민가 마음이 통하지 않게되고 국정 운영에 장애가 많게 된다. 취임해서 임기를 더할 때까지 공복의 자세와 대화와 신뢰 구축의 정신을 고수한다면 그는 우리 정치 발전에 획기적 기여를 한 지도자로 역사에 남지 않겠는가

 

이재석/교양학부/교수
이재석/교양학부/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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