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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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석교수
  • 승인 2004.10.11 00:20
  • 호수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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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김 병 석 교수<특수교육과 부교수>

매일 새로워지기


오십을 넘기면서는 삶에 대한 느낌이나 태도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삶이 좀 멀리 보이고, 시간이 뒤섞여 보이면서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됩니다. 최근 수년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저의 관점이 변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세 가지 측면이란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아주 작은 일’, ‘가치는 임시적인 것’, ‘세상은 수십억 년 연결된 것-항상 존재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일들로 때로 우리는 절망감, 무기력, 분노를 느낍니다. 그 이유는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우리 자신이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 일들이 너무나 견디거나 해결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순간을 무척이나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거친 후 세상의 일이란 본래 내가 해내기 불가능하거나 해내더라도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말할 수 없는 흥분과 신비감에 휩싸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생명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다양한 신체 조직과 그 기능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제가 할 일은 우유를 먹이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노는 것과 같은 생명을 유지하고 기능의 성장과 발현에 조력하는 작은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들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힘든 일이지만 생명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일이기도 합니다.
걱정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은 우리가 지닌 사물에 대한 가치관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본래부터 존재하는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구나 동기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나 용서 같은 것은 보편적으로 가치로운 태도 혹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의 욕구와 필요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중심적 욕구에서 생성된 가치는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가치도 자신의 욕구나 필요 혹은 동기가 바뀌면 소멸되거나 다른 가치로 대체됩니다. 변하는 구름의 모습과 같이 가치는 있는 것이지만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삶은 오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의 삶이 영원 속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부처님이 일찍이 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 뜻을 약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는 인류의 탄생 이후 인류의 유전자는 조상과 자손으로 유전되어 간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유전자에도 모든 조상의 흔적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갑니다. 문화적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문화나 존재 양식은 계속 변화되어 가지만 그 속에는 항상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 양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앞에서 잠깐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통시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많은 일들이 어떻게 시간적으로 혹은 관계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수명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수명을 제한하고 있는 벽을 상상으로 허물어 버리면 모든 인류가 한 평면위에 존재한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존재는 다른 모습으로 같은 평면의 다른 지점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있거나 같은 존재는 각 각 다른 기능을 하면서 같은 평면의 다른 지점에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 우리는 평면의 다른 지점에 있는 같은 일이나 상관이 있는 일들이 다른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일로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평면의 다른 지점에 있는 같은 사람도 다른 가면에 의해 같은 사람으로 식별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통시적인 존재라는 생각은 점 점 더 뚜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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