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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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부>
  • 승인 2004.10.18 00:20
  • 호수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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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이 재 훈 교수
<건축대학 건축학과>


인생의 값, 인격, 인간성

얼마전 TV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11년간 살았다는 미국인이 출연해 자신의 한국에서의 삶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며 퇴근을 제시간에 하지 못하는 한국인, 회식자리에서 소주잔을 원샷으로 넘기며 인생에 대해 논하는 한국인의 모습 등이 방영되었다. 그저 그런 내용이겠거니 하던 차에 그 미국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계속 미국에서 살았다면 인생에서 ‘인격, 인간성’이라는 뜻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순간, 사람이 살면서 인격이나 인간성을 수시로 생각하며, 자신을 수양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삶을 구현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격이나 인간성’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아니면 그러한 개인일지도 모르지만)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인격, 인간성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것이 사람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면서 인간의 생명의 한계를 서로 위로하고 인류의 공동가치를 찾아 공유하며,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이해하는 태도와 그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뜻한다고 생각하며 그 미국인의 시각에서 미국 사회에서 보여지는 인격과 인간성의 개념이 우리나라에서 다르게 보여짐으로써 그 차이를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합리성과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사회의 성격이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반면, 모순과 온정주의를 내포한 한국사회의 다소 불합리한 인간적 관계가 서로에 대한 감성적 이해를 바탕으로 불완전한 인간사회에서의 그럴듯한 인간성으로 비쳐지며 이를 인정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며칠전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다. 어수선하며 번잡한 결혼식장은 우아하고 고상한 결혼식의 분위기를 서포트해 주지는 못하였다.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장에서 마침 옆자리에 예순 남짓 되어 보이는 두 분이 앉아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A가 지난 겨울에 둘째 아이 혼사가 있었다고 하자 B가 왜 연락을 안했느냐며 물었다. A는 번거로울 것 같아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B는 따지듯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 결혼을 축하하는 것도 있지만 그러한 기회를 통해 한번 얼굴 보고, 서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아니냐? 그것이 인생 아니냐? 며 부아렸다.
나는 그것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인간성’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속에는 결혼식을 행하는 주된 목적이 감추어지기도 한다. 어수선한 결혼식 분위기가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헷갈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추어진 삶의 한 형태, 인간간의 감성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비합리적인 목적의식과 서로의 모습을 통한 삶에 대한 존중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애틋함이 배제된 목적지향의 사회적 틀과는 다른 것이다.
근래 대학사회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나, 교수와 교수의 관계, 교수와 학교의 관계에서 사회적 목표를 향한 열정이 지나쳐,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에 뿌리를 둔 인간성, 인격의 삶의 가치가 상실되어가고 있는 생각이다. 학점부여와 강의평가라는 틀에서 사제지간의 교육에 대한 믿음이 없이 지식전수가 이루어지고 학생의 스승에 대한 권위는 무너진다. 사람들에게 해서 되는 일과 안되는 일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없이 사회제도상의 역할과 책임만을 따지며 사회적 틀에 맞출 것을 강요한다. 나이에 따른 교수의 권위는 연륜의 경험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방해물로 여겨질 뿐이다. 반면 교수들은 개인의 이익변화에 따라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인격이나 인간성으로 커버되는 부분이며 어디까지가 사회 규범으로 질서화 되어야 하는 부분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한국인의 고유한 인간성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속과 변화, 그 과정속에 인간미가 스며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변화는 너무 빨라서도 안되며 너무 느려서도 안 되는 부분이다. 인간의 변화의 발자취는 그 보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보폭을 서로 맞추려는 노력이 한국인이 가진 삶의 가치, 인간미가 풍겨 나오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TV에 출연한 그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을 보았다고 생각된다- 사회의 틀의 빈틈에 놓여있는 인격, 인간성.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겸손하게 인간의 삶의 다양한 가치들을 받아들인다면, 인격과 인간성은 한국적이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해의 원천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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