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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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운석
  • 승인 2004.10.21 00:20
  • 호수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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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송 운 석 교수
<사회과학대학장>


진정한 보배

마조스님이 혜해스님에게 물었다.
“여기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진리의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에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혜해의 보배창고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그 마음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사용이 자재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한마디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달아 자신의 진정한 보배 창고인 본 마음을 보았다고 한다.
여기서 마조스님이 지적한 “나에게 묻고 있는 마음”이란, 당대의 가장 큰 스승 앞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당차고 진솔하게 진리를 구하는 혜해스님의 마음을 말한다. 일획의 사심도 없이 순수하게 진리가 무엇인가를 깨우쳐 알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바로 진정한 보배창고라고 마조스님은 일러주었던 것이다. 마조스님이 혜해스님에게 일러주었듯이 우리 안에는 누구에게나 더하고 덜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 있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곳에서 바른 생각이 나오고, 아름다운 예술과 가르침이 나온다. 잡다한 잡념에서 벗어나 마음을 고요히 할 때 우리 속에 진정한 삶의 평화가 깃든다. 그곳에서 창의적 사고가 싹트고 어떠한 상황도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솟는다.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본 마음에 자신의 본 성품이 숨어있고 진정한 목소리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산란해지고 개인적 이익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말과 행동이 바를 수 없고, 우리의 삶이 바를 수 없다. 자기 중심적이고 욕심에 더렵혀진 마음, 남의 의견과 행동을 널리 수용하지 못하고 그들을 비방하며 성내는 마음, 그리고 진정 자신이 해야할 소중한 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마음은 우리 삶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나의 마음도 늘 맑고 푸르며 높은 기상을 갖기를 기대해본다. 모든 것을 다 품어도 남음이 있는 하늘과 같은 널찍한 마음을 갖고 살기를 염원해 본다. 하지만 어느새 나의 마음은 많은 상념에 뒤덮이고 마는 것을 발견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많은 아픈 기억들이 뇌리를 스치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한 삶의 터전을 확보할 수 있을까, 현재하고 있는 일들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등의 많은 생각들이 들끓고 있음을 본다.
올 가을에는 밖으로 분주하게 내 달리며,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옳고 그릇됨을 구분하기에 분주하고, 나에게 유리한 것들을 쫓아 헤매는 나의 생각을 안으로 돌려보고자 한다. 그리고 오래된 책상서랍을 정리하듯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 욕심에 더렵혀져 있고, 성냄과 원망에 찌들어 있는 나의 마음을 깨끗이 닦아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순수한 본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아마도 먼저 마음에 두고 있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리라. 미움, 사랑, 과거의 마음 아픈 기억들, 심지어 아름다운 추억까지도 모두 놓고 버리고 비워야 하겠다. 이러한 것들은 그간 내가 살아온 삶의 찌꺼기이며, 나를 고정관념에 묶어두는 족쇄다.
이제 모든 만물이 자신이 가꾸어온 보배를 나누는 결실의 계절에 접어들고 있다. 이 때 우리도 한번 진지하게 나를 살리고, 나를 성장케 하며, 내 삶의 결실을 가능하게 하는 그 원천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조스님이 혜해스님에게 무엇을 일러주려 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음미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본 마음을 회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자신만의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아무리 고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왔어도 순수한 우리의 본 마음은 그 작용을 멈춘 적이 없다. 단지 우리가 그 소리를 외면한 채 밖에서 무엇을 찾고자 헤매었고, 남들의 말과 생각을 헤아리기에 분주했을 뿐이다. 밖에서 구하고 얻은 명예, 돈, 권력 같은 것들은 유한하여 때가 되면 놓아야할 진정한 우리의 보배가 아니다.
남들의 생각과 말을 헤아려 얻은 지식은 남의 목장에 소를 세는 것과 같아 아무리 세고 또 세어도 진정 내 것이 될 수 없다. 올 가을만큼은 아무리 바빠도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나의 진정한 보배의 참된 소리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맺어야 할 진정한 삶이 결실이 무엇인지 헤아려보는 값진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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