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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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춘옥교수
  • 승인 2004.10.27 00:20
  • 호수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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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김 춘 옥
<언론영상학부>

여학생들에게 告함

언제였던가.
나도 너희들처럼 발랄하고, 꿈 많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파르르 떨 만큼 예민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단다.
그 때 우리는 ‘개똥 굴러가는 것만 보고도’ 웃었고, 낙엽이 뒹구는 것만 보아도 구르몽의 ‘낙엽’ 이라는 시를 외우며 눈물을 글썽이곤 했단다.
지금은 제목도 잊어 버렸지만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라는 구절을 읊으면서 인생에 대해 감상적인 고민을 하는 척도 했었고, 독일 소설가 루이제 린저가 지은 ‘생의 한 가운데에서’를 읽고는 비 오는 날 우산도 바쳐 쓰지 않고 거리를 헤매기도 했단다.
전혜린 평전은 우리 여학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많은 기억을 갖게 해 주었지. 그 선배여성이 가졌던 극도의 감성과 지성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를 질투하다가, 마침내는 내 마음이 가장 편한 상황으로 결론이 나 버리도록 내 버려두었지. 그것은 바로 전혜린을 무시하는 것이었단다.

입학하자마자 교수들이 전해주는 ‘읽어야 할 책’ 명단을 보고 대학 4년 내내 주눅이 들어서 지내기도 했지. 이름만 들어도 ‘골치 아픈’ 사상가와 그들의 저서를 적은 긴 명단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대학생 자격이 없다’는 자책을 하게 만드는 일종의 살생부였던 것 같구나.
그 때의 이야기를 공감하는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말이야, 가장 잊을 수 없던 것은, 우리 여학생들은 남학생 속에 끼어서 늘 ‘남성의 현실’과 ‘남성의 희망’ 속에서만 살았던 것 같구나. 여대생들의 모델역할을 할만한 대상이 너무 적었단다. 사회적으로 ‘아주’ 유명한 여성 몇 명. 우리는, 전혜린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유명한 여성분들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느끼면서, 나중에는 그들을 따라 갈 수 없기에,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들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하고 남성들의 가치관에 따라 ‘현모양처’를 지상의 명제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단다.
교수들이 내민 ‘읽어야 할 책’의 명단 속에서도, 그 많은 학내 모임에서도, 여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책도 없었고 담론의 주제도 없었단다.
내가 프랑스에 유학했을 때, 그곳 여성들의 사고는 내게는 문화적 충격 보다 더 큰, 그러니까 여성관련 사고체계의 기본 틀을 마련해 준 계기가 되었단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은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만 나타난다는 인식을 대부분의 남녀 학생들은 인정하고 있더구나. 생물학적인 차이가 지적인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은 ‘고인돌 시대’ 사람이거나 ‘마쵸’로 낙인찍혔던 분위기. 그 분위기는 ‘남녀의 차이란 출생 이후 교육에서 비롯된 것’ 이라는 시몬느 보바르의 주장이 만들었던 것이었단다.
그로부터 참 오랜 세월이 지났지. 그런데 그 세월이 덧없이 지나온 것은 분명 아닌 것 같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프랑스에서 받았던 그 충격의 수준으로 달려가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단다.
여성이 장관을 하고 총리로 임명도 될 뻔 했고- 그 임명이 실현되지 못했던 것도 여성이었기 때문이라는 여성계의 주장이 지금도 설득력을 얻고 있단다.

심지어는 정당의 당수도 하고. 기업에서 이사도 하고, 여기자도 많아지고, 여기자들이 해외 취재도 마음대로 가고, 결혼을 해도 언론사에 그대로 남아 일할 수도 있고. 나는 특히 여기자가, 내 경우에서처럼 (?), 결혼 기피대상자 0 순위가 아니라 선호 상위순위가 됐다는 점이 정말 기쁘구나.
이제는 ‘미래의 모델 여성’의 수가 너무 많지? 선택하기가 힘들 정도지? 그들처럼 되기 위해서, ‘결혼은 옵션, 직업은 필수’라는 말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독하게 마음먹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여학생들을 보면 정말 부럽고 고맙고 흐뭇하단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학교의 행정은 여성의, 여학생의 발전된 사고를 수용할만한 능력이 있는지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여성과 관련한 사안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우리 학교는 아직도 ‘제3공화국’. 내가 내린 정의란다.
대학은 사회의 합리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할 책임도 있단다.
바깥에서 일고 있는 변화가 대학 안에서는 오히려 하나도 실천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사자가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리적 사고를 하는 교수와 학생들 -남녀를 가르지 말고 - 도 아주 많단다. 이들을 중심으로 평등한 단국대학교를 만들기 위해 여학생들, 앞장서 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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