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백묵처방
  • 이 은 재 교수<상경학부·무역학전공>
  • 승인 2004.11.23 00:20
  • 호수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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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

창문을 열면 맑고 높은 하늘에서 부서지듯 사환이 나의 가슴에 내려앉는 엷고 따사로운 가을 햇살!
그 햇살을 느낄 때 나는 다음과 같이 느낀다. 어릴 적 엄마 품에 포근히 안기여 여한 없이 젖을 물고 꿈나라로 자꾸만 자꾸만 깊이 더 깊이 빠져들고 싶을 때 느끼는 안락(安樂)과 나의 허기진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던 그 체온! 그러나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스산한 바람은 나의 마음을 더욱 애려오게 만드는 11월이 벌써 성큼 다가왔다. 자신의 앙상한 치부를 드러내며 맥없이 흩날리며, 속절없이 바람만 탓하는 나무들, 꽃들 그리고 내 연구실에 매달려 있는 너덜대는 무심한 2004년 캘린더!
세상살이도 우리네 인생살이도 또한 스스로 그러할(自然) 진데 어제의 따스함을 기억하고, 내일의 안락(安樂)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또 속절없이 오지 않는 새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죄 없는 바람만 탓하며 오늘을 산다.
작금의 시절 한번 쉬 돌아보면 또한 하 수상타! 모든 것이 높으신(?) 정상배들 자신의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고 허덕이며, 유능한 인물들을 온갖 누명을 씌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완벽한 역사왜곡(소위 시체만 남은 명분 및 형식논리)을 위해 목숨까지도 앗아갔던 조선의 당쟁과 지금 21세기 우리사회 또한 그 시대와 다를 바 무엇인가? 무조건 근거 없는 비난과 무분별한 정책으로 백성들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고 고단한 나날을 힘겹게 부여잡고 질긴 목숨이어 가네……. 우리도 우리끼리도, 우리자신이 가지고 싶으나 가질 수 없는 것은 파괴시키려는 인간의 동물적 파괴본능을 앞세워 거짓 선전, 익명의 백색테러 및 왜곡된 시각으로 남을 바라본다. 또한 그로 인해 쉽게 남이 피땀 흘려 쟁취한 결과물을 빼앗고, 매장시켜 본인의 기득권 유지뿐만 아니라 남의 성과물을 통해 세상에 등장하고자 한다.
마치 3류 신파극같이 자신의 연애는 로맨스이고, 남이 연애하면 불륜이고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양 극단적 논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영원히 서로 저주하고 복수하며 살 것인가? 계속 다람쥐 바퀴 돌듯이 항상 잔인한 5월과 6월을 뼈 속 깊이 새기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내일의 따스함을 맛볼까요?

“용서”라는 책에서 저자인 중국인 빅터 챈은 티베트의 최고 정교(政敎)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불교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비(용서)이고, 다른 하나는 상호연관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또한 달라이 라마는 “사람과 행동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는 나쁜 행동에는 반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을 한 사람까지 적으로 몰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그 행동 뒤에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고, 그러면 우리의 친구가 될 수 도 있습니다.”라고 빅터 챈의 손을 빌어 말씀하셨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인이 티베트국토를 유린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티베트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티베트의 풍속과 사원을 어지럽히고 파괴하였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외부의 충격에 잠시 흔들렸지만 곧 사랑과 자비(용서),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利他心)하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심저(深底)에서는 여진(餘震)에도 미동(未動)도 없이 늘 잔잔하고 고요하고 평화로 왔다. 그리고 곧 별 어려움 없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오늘 중국은 티베트의 적이지만, 내일은 친구가 될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고, 용서해야만 스스로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큰 스님인 법정스님께서는 “용서는 가장 큰 마음의 수행이다. 그리고 상처의 가장 좋은 치료약은 용서하는 일이다.”라고 일찍이 설파하셨다.
또한 천주교의 수장이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살면서 얼마나 용서했는가에 따라 하느님은 당신을 용서할 것이다.”라고 미사 때 항시 설교하셨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자의 밀고와 자신의 동족과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죽인 자를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용서는 모든 용서의 원형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시대에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위선과 위증 등 모든 거짓된 말과 행위로 우리에게 상처를 준 자들에게 용서하고, 미움의 마음을 없애고 자신을 스스로 정화시켜야 한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의 평화를 달성하게 되고, 모든 형태의 사회적, 경제적 인종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우리의 마음속 장벽을 허물게 되며, 마침내 사상까지도 진정한 평화적 터전을 만들기 위해 초월하고, 우리 모두 하나의 행진대열에 참여하여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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