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화경대
  • 최재선
  • 승인 2004.12.24 00:20
  • 호수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물도 팔자 나름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최근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동물 복지권(animal welfare rights)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개고기를 식용하는 우리나라 의 처지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에게 인격을 준중해주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동물들에 대해서도 일정한 품격을 인정해주고, 보호하자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같은 논의의 배경에는 늘 그렇듯이 동물 애호론자들과 극단적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나타난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유럽 등지에서 동물 복지권이 어느 정도 구체화 되고 있고, 이들의 입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례:유럽의회는 지난달 바다에서 음파탐지기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잠수함 등에서 사용하는 음파탐지기가 고래 등 해양포유동물의 청각기관에 영향을 주어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음파탐지기가 해양포유동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EU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조치로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사례:캐나다 동부해안에서는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뱃길을 일부 변경한 일도 있다. 캐나다 핼리팩스와 노바 스코티바 지역의 경우 평소 이용하던 항로 근처에서 고래가 먹이를 찾고, 새끼를 낳는다는 이유를 들어 선박을 다른 곳으로 다니도록 했다. 선박회사 등은 이 같은 조치에 따르게 되면, 기름 값이 너무 들어가고, 화물 운송에도 영향이 있다고 항변했으나 묵살당했다.

세 번째 사례:최근 유럽의회에서는 짐승, 특히 말을 장거리 운송하는 때에 지켜야 하는 기준을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우선 말을 8시간 이상 운송하는 경우에는 말이 스트레스를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마굿간을 독방으로 만들어 운송하도록 했다. 이 조항은 트럭뿐만 아니라 배를 이용하여 아일랜드 등 섬나라에서 유럽대륙으로 짐승을 실어 나르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기준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새끼 짐승이나 임신하고 있는 어미 짐승은 아예 운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성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또 이런 내용도 있다. 짐승을 한꺼번에 실으면 공기가 혼탁해지는 점을 고려하여 트럭에 배기가스 배출 시스템을 설치하고, 트럭 기사가 즉각 감지할 수 있도록 자동온도 감독 장치도 부착하여 쾌적한 여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운송되는 도중에 어쩌면 운전기사가 짐승을 학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해서인지, 절대 발길질이나 손찌검을 할 수 없도록 못 박는 동시에 이 같은 조치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공위성까지 동원하고 있다. 즉, 새로 제작되는 동물 운송 트럭은 2007년까지, 그리고 기존의 트럭은 2009년까지 위성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부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럽연합 등의 조치는 우리나라 처지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 등을 운전하다가 ‘짐승처럼 실려 가는’소나 돼지, 닭을 본 적이 있는 분이시라면 이런 제도가 한낱 웃음거리로는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최재선<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동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