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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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재 인 교수
  • 승인 2004.12.21 00:20
  • 호수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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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호는 내부로부터

오 재 인 교수
<상경학부·경영정보학 전공>

지난여름, 필자는 한국-중국 CIO(정보담당중역)공동세미나에서 논문발표 차 북경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공동세미나 후 우리나라 정보통신부에 해당되는 중국 신식산업부와 신식협회의 배려로 만리장성을 탐방했다. 이전에 처음 들렸을 때에는 장성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멍하니 감탄사만을 되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유 있게(?) 이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만리장성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서 북방 이민족의 침공에 맥없이 무너졌을까? 그것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등으로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었다. 순간…… 필자의 귓전으로 북방 침입자의 함성과 이를 수비하려는 중국 역대 왕조 군사들의 아우성이 아스라이 들리는 듯했다.
때는 명나라 말기. 당대 명장인 오삼계는 진원원이라는 기녀에게 반해 거금 1천 냥을 주고 첩으로 맞는다. 만주 지역을 평정한 청나라 태종은 중원까지 차지하기 위해 14만 명을 이끌고 명나라를 침공하자, 오삼계 장군은 숭정제의 명을 받아 50만 명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산해관’의 진장으로 떠난다. 따라서 애첩인 진원원과도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된다. 명나라는 대 청나라 전투에서 패전을 거듭하자, 오삼계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명나라의 주력부대가 북동쪽 변방인 산해관에 집결한 틈을 타서, 서안에서 봉기한 이자성은 농민반란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북경으로 진격한다. 급보를 접한 오삼계 장군이 북경을 사수하기 위해 진군하던 중, 자금성은 이미 함락되었고 숭정제도 자살했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다시 산회관으로 회군한다.
하지만 산회관을 청군으로부터 사수하겠다는 오삼계의 각오도 잠시, 이자성의 부장이 애첩인 진원원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격분하게 된다. 그의 부친이 이자성의 협박을 받아 귀순을 종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산해관을 활짝 열고 청군에게 투항함과 동시에 북경으로 진격하는 청군의 선봉까지 서게 된다. 만주에서 중원으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인 산해관의 현판에는 “천하제일관”이라고 쓰여져 있다. 그 현판 글씨가 무색하게, 청군은 명나라 50만 대군의 1/3도 못되는 군사로 산해관에 무혈 입성하게 된 것이다.
만리장성은 동쪽 산해관에서 서쪽 가욕관에 이르는 총연장 약 6,400㎞로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이라고 한다. 그 기원은 춘추시대의 제나라에서 비롯되며,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자 서쪽 감숙성에서 동쪽 요양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하여 흉노를 방어하였다. 그 후 한 무제는 서쪽 끝인 옥문관까지 장성을 연장했는데, 만리장성이 동쪽 산해관에서 서쪽 가곡관에 이르는 오늘날과 같은 규모를 갖춘 것은 명대에 들어서였다.

하지만 청대 이후에는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단지 중원과 만주 및 몽골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 역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리장성을 완성한 명 왕조는 오히려 그 관문인 산해관을 청군에게, 그것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내 주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IT 기술의 해외유출이 심각하다는 정보통신부의 발표가 있었다. 유출자의 69%가 퇴직사원이고 현직사원이 17%로서, 내부 관련자가 태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IT 기술의 유출로 우리 기업의 매출이나 손익 감소 등 직접적인 피해 발생이 92%에 달하여,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보보호가 필수적인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간 학계에서도 정보보호를 침해하는 주범은 외부인보다 내부인이며, 내부인에 의한 정보보호 침해가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꾸준히 발표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은 연구개발이나 판매에만 매달리고 정보보호에는 예산을 거의 투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내부인에 대한 정보보호 관리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 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제는 우리 기업도 명나라가 패망한 주된 원인이 내부인 때문이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IT 관련 내부인에 대한 불만족관리 및 배려, 정보보호에 대한 경영진의 깊은 관심, 정보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 등 그 대책이 매우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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