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화경대
  • 김일수
  • 승인 2004.11.30 00:20
  • 호수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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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리운 단국대학교 친구들

11월에 우리 대학은 개교 57주년이었다. 비록 기념식에 참석은 하지 못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79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연말의 비상계엄과 80년 5월의 휴교조치 등 나의 대학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민족대학을 주창하면서 설립한 대학의 창학이념에 구국이 들어있는 게 어째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단대신문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창학이념이 당시엔 좀 촌스럽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여하튼 단대신문사 기자생활을 하면서 생활에 구심점이 생기고 정신적으로도 조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땐 선배 동료들과 숱한 밤을 동침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최영미 시 <슬픈 까페의 노래>에 나오는 싯구처럼 “……아프지 않고도 아픈 척/ 가렵지 않고도 가려운 척/ 밤 새워 날 세워 핥고 할퀴던/ 아직 피가 뜨겁던 때인가// 있는 과거 없는 과거 들쑤시어/ 있는 놈 없는 년 모다 모아/ 도마 위에 씹고 또 씹었었지/ 호호탕탕 훌훌쩝쩝/ 마시고 두드리고 불러제꼈지……” 그렇게 살았다 그땐.
당시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때로 곤혹스럽기도 하셨을 터인데도 묵묵히 교단을 지키셨던 교수님들은 어느덧 정년을 넘겨 이미 대학을 떠나셨거나 정년을 목전에 두셨다. 학교가 지금의 틀과 모양을 갖추는데 그 분들의 열과 성을 밑거름으로 하였다는 데는 두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80년대를 관통하면서 불면의 밤을 전전반측으로 보내셨을 교수님들의 노고가 57주년을 맞은 이 대학의 역사에 분명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후배기자들이 보내주는 단대신문을 보면 일간지 기사 내용이 우리 대학신문에도 실린 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대학, 우리 교수님들, 우리 학생들의 동정이 뉴스 가치가 있다는 것일 게다. 학교의 발전을 이처럼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한 동문들이라면 어디에 살든 또 누구든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학술발표와 연구활동으로 분주한 교수님들의 동정을 대할 때,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문들의 칼럼을 읽을 때, 유수한 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상을 한 재학생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을 때 모교가 자랑스럽지 않을 동문이 있겠는가.
나는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을 여태껏 살갑게 여기며 살고 있다. 그들을 만나는 게 무엇보다 반갑고 즐겁다. 다들 대학보다는 고등학교나 중학교, 초등학교 동창을 오래 사귄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죽이 안맞아 밤새워 서로 투닥이며 말씨름하더라도 함께 보듬고 지냈던 한남동 친구들이, 선배들이, 후배들이 제일 소중하고 또 그랬던 때가 그립다. 이제 벌써 연말이다. 아파트 편지함에 각종 연말모임을 고지하는 엽서나 안내장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지방에 산다는 핑계로 불참하기도 하고 바쁘다는 것을 변명거리로 삼아 슬쩍 빠지기도 할 것이다. 사실 그러다 보니 참석하는 모임은 정작 한 두 개가 고작이다.
12월 12일이 단대신문사 식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몇 년 전, 날잡고 연락할 것 없이 이 날 만나자고 정한 날이다. 올핸 꼭 가고 싶다. 총 맞기 전에.
김일수<공주영상정보대·교수>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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