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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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석
  • 승인 2005.02.27 00:20
  • 호수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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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석 교수 <치과대학 구강내과>
어느 부부의 ‘선한 보상’

오래 전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감명 깊은 이야기인지라 잊지 않도록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오자 기록해두었다. 실화라고 하기에 더욱 인상적이었지만 들은 이야기 인지라 실제의 사건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강남에 사는 친구의 아파트 옆집에 점잖게 생긴 중년 부부들의 이야기이다. 옆집의 남편은 4형제 중 막내로서 나이가 많은 부모와는 따로 살고 있었다. 옆집 남편의 부모는 나이가 많이 들어 거동이 쉽지 않은 노부모이다.
한때는 강남의 많은 부동산으로 재력이 있는 부모였었다. 수년 전에 미리 장래를 생각하여 4형제에게 모두 재산을 상속하였다. 재력이 있고 그 당시만 해도 힘이 있어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두분 모두 거동이 힘들게 되었다. 허지만 위로 세 형이 있었지만 모두 불편해진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았다. 나의 친구 옆집에 사는 중년부부의 남편이 바로 넷째 막내아들이었다. 막내아들은 자기 부인에게 오랫동안 고민 끝에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부모를 모십시다.” 그러나 부인은 ‘형님들이 있는 데 왜 우리가 모셔야 되나요? 안되요”하고 말하였다. 그의 부인은, 나의 친구가 보았을 때, 교양이 있었고 남을 충분히 배려하는 훌륭한 여성이었으나 형님들이 해야 할 일을 떠 맡는다는 것은 왠 지 자존심상하고 손해 보는 듯 하다고 판단 하였든 것 같다.
그 대화 이후부터는 막내아들인 남편은 아내에게 말도 하지 않고, 손도 잡지 않으며, 전혀 가정에서 또는 밖에서건 상대를 하지 않았다. 근무를 끝내면 일찍 집에 들어왔지만 자기 일 만 하고, 끝나면 혼자 자고 부인이 밥을 주면 아무 말 없이 먹고, 그리고 출근시간 되면 출근하고, 이렇게 무심한 시간이 지나길 6개월 정도 되었다. 부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부모를 모시자는 제안에 화가 나 속으로 ‘흥,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하는 심정으로 지냈으나 이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너무나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불안감이 조금씩 일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한 말이 절대 옳지 않았다는 것을 양심으로 이미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이전부터 반성하고 있었으나 자존심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남편이 자신의 처사에 환멸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도저히 이렇게 지내다가는 부부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정이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부모에 대한 효도를 도와주지 못하였다는 양심의 가책이 말할 수 없이 자신을 채찍하였다. 도저히 견디다 못한 부인이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여보, 내가 잘못했으니 부모님들을 우리가 모시도록 해요”
드디어 막내아들 부부는 노부모를 집으로 모시게 되었다. 부부간의 평화도 다시 돌아왔다. 막내 며느리는 하루하루가 힘들었으나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노부모를 보살펴 드렸다. 노부모를 모시고 3년이 지나자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곧이어 일주일 후 아버님도 돌아가셨다. 자식으로서의 도를 다한 것에 대하여 며느리는 스스로의 만족감과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그 이후 일어났다. 시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는 가운데 엄청난 재산을 막내아들의 명의로 물려주신 것이 서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식 중 아무도 부모가 그렇게 많은 재산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부모는 아들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강남 양재동의 수백억이 되는 노른자위 땅을 몰래 가지고 계시다 마지막 3년을 뒷바라지 한 막내아들에게 모두 남기고 가신 것이었다.
얼마후 막내아들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멋있는 자가용 벤츠, 매우 큰 다이아 몬드 목걸이와 반지 등 자기가 평소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남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당신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그리고 사랑하오”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부인은 물질적 보상 보다는 스스로의 성취와 만족감에 더 큰 보상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묵묵히 할 때,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하여도, 어떠한 형태로라도 하늘이 보상한다. 내가 이 사건을 들으면서 깨달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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