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캠퍼스에서 몽상(夢想)을
백묵처방 / 캠퍼스에서 몽상(夢想)을
  • 정낙섭
  • 승인 2005.03.23 00:20
  • 호수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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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낙 섭 교수
<혈액종양내과>

나는 우리대학 천안캠퍼스를 좋아한다. 20만평이 훨씬 넘는 캠퍼스의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연학재에서 걸을라치면 우리대학 병원까지 15분이면 넉넉하다. 안서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새로이 포장한 아스팔트길을 따라 이런 저런 석상들을 훔쳐보며 걷노라면 다시 젊어진 기분이 든다. 전국 낚시 대회를 할 만큼 제법 큰 호수 바로 동쪽으로는 이 나라의 대동맥과 같은 제1번국도 경부고속도로가 뻗어있어 크고 작은 차들이 힘차게 달린다. 봄에는 철쭉꽃과 개나리가 서로 다투며 피어 교정을 수놓고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각 건물사이의 오솔길을 덮으니 그 경치가 과연 전국에서 손 꼽을만한 대학교정이라고들 할 만하다. 그리 높지 않은 차라리 동산 같은 산자락에 넓게 자리 잡아 적당한 간격으로 대학 건물들이 퍼져 있어 건너편 태조산 아래의 경치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우리는 자연의 아들이다. 천안캠퍼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바탕으로 그나마도 잘 순응한 덕에 지금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교정을 걸으면서 나는 가끔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본다. 교정에는 아예 차를 들여 놓지 말았으면 하고……. 명색이 문명의 이기라하여 현대사회의 필수품이긴 하나 매연을 마구 뿜는 차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니고부터 우리 자연의 아들들은 병들어 시들고 미쳐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교적 단순한 감염성 질환이 고작이었던 나의 청년시절 때의 병들과는 달리 근래에는 소위 문명의 이기로 말미암은 병들로 병원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집중치료병동에는 각종 사고 환자, 주로 교통사고와 외래환자, 그리고 내과병동에는 난치의 악성질병환자들로 1천 병상에 가까운 단대병원인데도 모자랄 정도이다. 따지고 보면 이 대부분의 질병들이 공업문명발달의 부산물이고 예방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먹을거리가 없어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가 되어 병약해지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과식과 과음, 그리고 공해로 인하여 발생하는 병들이 매우 많다. 과식으로 말미암은 병들로는 비만증, 당뇨병, 동맥경화증, 고혈압, 관절염 및 각종 소화기관질환을 들 수 있겠고 과음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간경화증, 구강과 소화기질환 및 여러 가지 암의 유인이 된다. 음주에가 흡연을 곁들이면 그 발생빈도가 몇십배로 늘어난다.

요즘에도 나의 건강모토는 여전히 ‘소식다동(小食多動)’이다. 옆에 있는 가까운 내 친구는 하루에 일만보를 걷지 못하면 안달한다. 아무리 어렵다손 치더라도 요즘같이 자유스럽고 또한 열린 사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라도 될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얻을 수도 있다. 이것 저것 다 따지고 비교하며 욕심을 부리다 보니 무직의 백수가 늘고 제3국의 젊은 노동자들이 활개를 치는 것이나 아닌지. 일을 하는데 귀천이 어디 있으며 건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데 무엇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것인가? ‘인생칠십고래희’라고 어린 시절에 나는 학교에서 들었다. 엊그제 주말 나는 새벽에 오르기 시작한 태조산에서 장엄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뱃심을 키우며 즐겼다. 곰곰이 나의 젊은 시절을 회고해 볼 때 별로 먹을 것이 없었던 가난하던 나의 대학시절로써 OB맥주는 아주 사치품이었고 북괴공산당(중공을 포함하여)들의 남침(6·25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비롯한 남쪽의 금수강산을 재건하느라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교정에서는 차를 눈을 씻고 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10분에서 20분쯤 걸으면서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소식다동(小食多動)’이었던 것이다.
30세를 조금 지나 나는 소위 선진국에 가서 40년 가까이 열심히 배우고 경험하고 일하다가 귀소본능의 발동으로 이같이 아름다운 천안캠퍼스에 와서 머문 지도 벌써 한 해가 넘어 지나갔다. 병원이 서울에 자리했었더라면 나는 싫어했을 것이다. 모국의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많은 것을 갖게 되었으나 반면에 그만큼 잃고 있는 것도 같다. 공업문명 시대 속에 살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하다. 안팎의 정세로 보아 더욱 불안감을 금치 못한다. 거리에서나 탈것에서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핸드폰이 넘쳐나 공공장소가 안방과 같이 떠들썩하다. 그러니 산으로, 산으로 향할 수밖에. 이젠 거기도 포화상태에 가깝다. 출산율이 세계최저인 1.17%을 기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누가 일하여 날로 늘어만 가는 늙은이들을 부양할 것인가? 미디어에서는 결과만 보고하면서 그 원인과 대응책엔 아무런 말이 없다. 그 해답이야 뻔한 것을……. 별 걱정을 다하면서 아직까지도 교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큰 별똥이, 아니면 쓰나미가 우리를 방문하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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