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신종한
백묵처방 / 신종한
  • 신종한
  • 승인 2005.04.05 00:20
  • 호수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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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종 한 교수

<문과대학장>
전환기 대학의 좌표

“대학은 건물이 아니다.” 경제학자 슘페터의 말이다. 대학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대학은 <이성과 진리의 전당>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요, 학문을 하는 곳이다. 또한 그 탐구를 위하여 논리적·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곳이다. 그러면 원래부터 대학의 기능이 진리탐구와 학문을 하는 곳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리양성을 목적으로 고려시대 국자감(國子監)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성균관(成均館)이 있었다. 성균관은 공인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대학의 기능을 유지해 온 학교로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성균관의 뿌리는 고려시대 국자감으로 서기 992년에 설치되었으니 서양의 대학보다 1백여 년이나 더 앞섰다. 국자감은 완벽한 종합대학으로 문학부(太學), 법학부(律學), 이공학부(算學), 전문부(四門學) 등으로 현재의 학제와 유사하며 교수는 박사와 이들을 돕는 조교로 되어 있었다. 이 국자감이 고려 충선왕 때 성균관으로 바뀌었고, 조선조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퇴계 이황이 33세에 성균관을 다녔던 것으로 미루어 문턱이 높은 대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의 경우도 대학은 관리양성이나 교직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권위를 가지고 당시의 정치세력과 정면으로 대립, 충돌한 일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림(儒林)의 세력은 전통적으로 강대하였으며, 성균관 유생들은 국가 정책에 잦은 상소로 참여하기도 했다.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진정한 권위를 갖추게 된 것은 근대 민주주의의 사조가 발흥한 이후의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인간주의(humanism)의 등장과 함께 대학도 진정한 권위를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19세기는 근대적 대학의 황금시대로, 대학은 제반 사회 모든 행위의 선두에 섰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은 공리주의, 진화론, 사회사상의 중심지였다. 그야말로 근대의 완성은 대학이 중추역할을 하였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학은 그 나라의 심장으로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대학에서의 연구 활동을 통해서 얻어진 연구결과로서의 진리는 구체적인 사회 활동에 적용되어 새로운 발전을 가져오는 촉매로서의 역할을 했다. 대학이 연구기관으로서의 제 구실을 다한 사회와 시대는 발전과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대학이 처한 실상은 어떠한가? 어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대학들은 60년대에는 상아탑처럼 고고하였고, 70년대는 공사판처럼 부산하였고, 80년대에는 독재에 저항하는 보루였고, 90년대에는 변화의 물결 속에 표류하는 섬이 되었다”라고.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진리의 전당>이라고 하기는 힘들어졌다. 예전처럼 제반 사회 모든 행위의 선두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의 변화에 적응력을 갖추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라의 크기가 작고, 국민이 대단히 역동적이기 때문에 대학의 기능이 정치와 경제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정부는 지금 산·학·연 연계를 내세우며 대학을 직업훈련 양성소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일전에 서울대학교 정운찬 총장은 교육인적자원부 직원 4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따끔한 비판을 했다. “대학은 직업교육의 장(場)이 아니다. 대학이 이차적이고 직업적인 훈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이유가 그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은 직접적 효용성으로부터 물러서 진리와 연구 그 자체의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산·학·연 연계와 응용도 중요하지만 역시 기본은 기초이다. 1970년대 초·중반에 미국 대학들이 응용보다 기초교육에 충실하고, 좁게보다 넓게 가르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대학교육 개혁 작업을 벌였는데, 그 때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1990년대 미국경제 대성공의 주역들이 되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기초를 넓게 배운 사람이 장기적으로 일을 더 잘한다”고 역설하였다. 옳은 말이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모르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은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만일 석기시대에 응용연구만을 지원했다면 아마도 대단히 정교한 돌도끼를 만들어 냈겠지만 금속도끼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개인이나 국가가 전환기에 처하거나 혼란에 빠질수록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현대의 문화현상은 한 마디로 디지털 세계이다. 모든 것은 디지털로 통한다. 그러나 그 현상의 본질에는 아날로그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아날로그적 사고를 배양하려면 응용학문이 아니라 순수학문에, 사회과학이 아니라 인문과학에 기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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