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선생의 자리
<화경대>선생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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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2.24 00:20
  • 호수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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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분의 구순(九旬) 축하연에 갔다. 평생을 오직 한길 교육계에 몸담아 오신 분이고, 지금도 한 대학의 재단이사장으로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평생을 올곧게 한눈 팔지 않고 교육자로 살아온 분이셔서 그런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비친 평화로운 미소가 홍안의 소년처럼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을 정도였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아! 나도 저리 늙었으면 좋겠다’, 아마 다들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9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적지 않다. 세월의 풍파가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교단 바깥의 그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선생이라는 직업을 자신의 천직으로 알고 살아 왔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서 태어나 해방과 전쟁 그리고 경제개발 조국의 근대화 과정 속을 교단 현장을 지켜왔으니, 몸과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더불어 실패와 시련도 없지 않았다. 모함과 시기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삶의 중심을 잡고 수많은 난관과 시련들을 헤쳐왔다고 했다. 어떤 삶의 중심을 가졌기에 그리 할 수 있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그러나 의외로 간단하고 어찌 생각하면 평범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다름 아닌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이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으며, 정의롭지 않거나 정도(正道가) 아닌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순리를 좇으며 명분이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며 진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인간적 도리나 선생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는 데 애써 왔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다보니 처음에는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틈엔가 저만큼 앞서 가더라는 것이다. 시샘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꿋꿋이 정도를 걸으며 한눈 팔지 않고 대의적 판단과 명분 있는 선택으로 선생의 길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이 삶의 주류로 부각되고 있는 오늘의 세상 돌아가는 관점에서 보면, 명분이나 대의와 같은 덕목은 고루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체면도 없고 염치도 없이 막무가내(莫無可奈)나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세태를 생각할 때, 선생의 그와 같은 철학은 두고두고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라는 직업은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직업임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을 평가할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즉,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사람’, ‘그 자리에 있어나 마나 한 사람’,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아니 될 사람’이 그것이다.
필자도 선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 선생이라는 직업은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교사도 상품을 파는 사람처럼 점차 인식해 가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세태를 두고, “동양문명 전통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격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화두같은 말씀을 남기고, 자리로 돌아가는 선생의 머리 위에 이름 모를 별들이 빛나는 것 같았다.
변호걸(안양과학대 교수)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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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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