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오월 단상(斷想) 그리고 대학교육의 본질
백묵처방 / 오월 단상(斷想) 그리고 대학교육의 본질
  • 지동선
  • 승인 2005.05.10 00:20
  • 호수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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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동 선 교수
<공학부 섬유공학전공>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지만 스승의 날도 있다. 이는 우연히 그리 정한 것은 아닌 듯싶다. 아마도 사물의 이치가 구명 분석된 뒤에야 지식이 이루어지고 지식이 이루어진 뒤에야 의지가 성실해지고 의지가 성실해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의 수양이 가능하고 몸을 수양한 뒤에야 집안을 바로 다스린다는 「大學」에 나오는 옛 성현의 말씀처럼 지식을 이루어 가정을 바로 다스리기까지 스승의 가르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교수가 된지도 어언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왠지 이맘때가 되면 그저 마음이 씁쓸하다. 왜냐하면 나 자신은 차치하고라도 요즘 학생들로부터 진정 존경받는 스승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또한 교수로부터 진정 사랑받고 인정받는 제자가 과연 얼마나 있는지 사뭇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옛말에“풍종화리 과래향(風從花裡 過來香)이요 수자죽변 유출냉(水自竹 流出冷)이라” 즉 꽃밭을 지나온 바람은 향기로움을 내고 대나무 주위에서 흘러나온 물은 찬 기운을 낸다는 말이 있듯이 훌륭한 스승 밑에는 훌륭한 제자가 나오기 마련이고 역으로‘청출어람(靑出於藍)’이랄까 훌륭한 제자가 있으면 훌륭한 스승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얘기하던 시절이나 선생이 바담풍(?)하더라도 학생은 바람풍(風)해야 한다던 시절이면 몰라도 교수평가제가 실시되고 있는 요즘 같은 세태엔 스승과 제자라는 말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들리는 현실이다. 그저 지식을 전수하고 가르치는 교수와 이를 배우는 학생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이제 바야흐로 산업사회로 대변되던 20세기가 끝나고 지식정보사회로 요약되는 새로운 밀레니엄시대를 맞이한 지금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고 대학의 본질은 진리를 탐구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전당이요 상아탑이라는 말이 아직은 유효한가? 돌이켜보면 IMF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 몰아닥칠 무렵 새로운 제도도입에 따른 당위성과 보편타당한 합리적 설득보다는 전국 대학가에 개혁의 화신처럼 ‘시대적 대세’(당시 그것을 강요하고 관철시키려 했던 사람들의 말이 그러했다)라는 명분(?)하에 시행된 오늘의 학부제는 지금까지 그것이 오히려 교육의 질 저하와 비능률을 초래한 점은 없는지 묻고 싶다.
얼마 전에 발표된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공동으로 기업최고 경영자(CEO) 1백9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국내 대학교육의 질은 ‘보통’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고, 대학교육과정에 대한 만족도가 ‘보통’에 머물렀고 대학교육이 기업현장의 요구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대한 평가도 ‘보통’을 넘지 못했다. 이들은 대학교육이 기업현장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유로 교과과정이 기업의 요구와 무관(43.7%), 새로운 지식·기술에 대한 교육내용 부족(25.3%), 교과과정이 이론중심(20.7%) 등을 꼽았다. 한마디로 아직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대학이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의 교육목표와 기능은 매우 다양해졌고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학은 그 나라의 심장으로서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지난 1월 취임한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 자원부 장관은 국내 대학 15곳을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고 나머지는 취업률 100%를 목표로 하는 특성화 교육중심대학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강력한 교육정책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학문연구에 주력하는 연구중심대학과 달리 특성화 교육중심대학은 산업현장에서 요구되는 특정분야의 인력을 집중 양성하는 대학을 말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교육정책추진 방침을 보면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대학교육이 결코 직업교육에 매몰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교육은 진리탐구와 학문연구 그 자체에 의미를 드러내는데 충실해야 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삶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되는 21세기의 문턱에서 세계는 너나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도 과거 이념전쟁의 시대에서 경제전쟁의 시대로 들어서기 바쁘게 지금은 기술전쟁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하여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 사회가 요구하는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며, 앞서 언급한 CEO들의 평가나 정부의 강력한 교육정책이 아니더라도 우리 대학인 모두는 의미 있는 오월에 가슴깊이 자성(自省)함이 마땅하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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