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학교 구성원 간의 예절
백묵처방 / 학교 구성원 간의 예절
  • 신동희
  • 승인 2005.08.30 00:20
  • 호수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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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동 희 교수 <사범대학·과학교육과>

Episode 1
2003년. 새롭게 교수가 된 한미소 교수. 학생들에게 최고의 강의를 제공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단국대학교 캠퍼스를 힘차게 오가고 있었다.
한미소 교수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100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기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한 달 남짓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전공 사무실이 있는 건물 내의 복도 양쪽 벽에 기대어 웃고 서 있는 눈에 익은 남녀 학생 대여섯이 멀리서 보였다.
그 학생들의 손가락에 꽂힌 담배가 보이기 전까지 한미소 교수는 특유의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듣던 그 학생들이 인사하리라는 한교수의 당연한 예측은 말 그대로 김칫국 먼저 마신 셈이었다.
그나마 그 멋진 학생들, 영 모른 척은 안하고 담배 연기 내뿜으며 한 번씩들 씨익 웃어주었다니, 감지덕지인가?
(달리 생각하기: 아마 그 학생들은 말없이 씨익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한미소 교수와 통할 정도의 친근감을 느꼈고,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는 것을 뭐라 하지 않을 융통성 있는 분으로 여겼기에 그랬을 것이리라)

Episode 2
2004년. 언뜻 보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30대 후반의 나절머 교수. 당시에는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사항을 문의하고자 모 행정 부서에 근무하는 반말족 선생을 찾아갔다. 문의할 업무의 담당 직원을 드디어 찾아 말을 붙이는 순간,
반말족 선생: 어떤 교수가 보낸 거야?
나절머 교수: 제가 교순데요.
반말족 선생: (나절머 교수를 힐끔 보더니 퉁명스럽게) 누구요? 이름이 뭐라구요?
나절머 교수: 나절머요.
반말족 선생: 나절머씨라구요?
나절머 교수: ...
나절머‘씨’는 수업 시간에는 물론이고 사적으로도 학생들에게 반말을 쓰지 않아 오히려 학생들이 더 불편해 할 정도의 사람이다.
생면부지의 직원 선생에게 들은 예상 밖의 ‘완전’ 반말에 나절머‘씨’도 감정이 이성을 제압하는 태도를 순간 보일 뻔 했단다.
(달리 생각하기: 학생들을 모두 자식처럼 사랑해 처음 보는 학생 누구에게도 친근감 있는 말투를 사용하는 반말족 선생. 자세히 보면 그다지 젊어 보이지도 않은 나절머‘씨’를 학생으로 젊게 봐 준 반말족 선생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리라)

Episode 3
2005년. 연구라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연구만 교수. 그 날도 밤늦도록 책상을 지키고 있는데, 방문 두드리며 들어오는 구라왕 교수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졌다.
구라왕 교수는 외부 재단의 연구 사업에 연구만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할 만한 괜찮은 주제를 물었다. 기회가 되면 구라왕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싶었던 연구만 교수는 흔쾌히 동의하고, 평소에 관심이 많던 연구 주제와 내용, 방법을 구라왕 교수에게 장황하게 설명했다.
연구만 교수의 말을 다 들은 구라왕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함께 신청해 보자는 말을 뒤로 하고 방을 나갔다.
그 후 며칠 동안 신청할 연구 주제에 대해 정리하던 연구만 교수는 연구비 신청 마감을 하루 앞두고 구라왕 교수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
연구만 교수가 제안하고 설명한 바로 그 주제로 이미 딴 사람과 연구 신청했다는 구라왕 교수의 통고였다.
학자에게 연구 아이디어라 함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축적된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재산이거늘, 얼떨결에 재산을 도둑맞은 연구만 교수는 자신의 바보스러움에 그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단다.
(달리 생각하기: 능력 이상으로 너무 바빠 보인 연구만 교수의 일을 덜어주려는 구라왕 교수의 깊은 속을 누가 알리요? 게다가 평소 거의 고민하지 않던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불과 사나흘 만에 멀쩡한 연구 계획서로 만들어냈을 구라왕 교수의 탁월한 능력에 찬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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