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나의 이광수론
백묵처방 / 나의 이광수론
  • 강재철
  • 승인 2005.10.04 00:20
  • 호수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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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재 철 교수
<문과대학·국어국문학전공>

Ⅰ. 나의 살던 고향과 반달
우리대학에는 한강이 굽어보이는 위치에 고풍스러운‘난파’음악관이 있다. 이곳에는 난파 홍영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유족이 기증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평소 음악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홍난파 선생이 작곡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과 최초의 동요인 윤극영 선생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으로 시작되는 「반달」의 작곡가가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제외시켰다. 작곡가가 친일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한 것이다. 이는 현행 국어교육에서 작품은 작품이고 작가는 작가라는 작품과 작가의 분리를 전제로 한 예술지상주의를 기본으로 추구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 착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Ⅱ. 문학으로 안내해준 「유정」
나는 중학교 때 이광수의 「유정(有情;1933)」을 읽고 한 없는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를 문학에로 안내한 유일한 계기가 된 작품이 「유정」이며 작가가 춘원 이광수였다. 이성에 예민했던 시절 교장 최석과 수양딸 남정임 사이의 사랑을 그린 「유정」은 소년기의 나를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큼 성숙케 했다. 그리고 풋풋한 나이에 접한 처음 겪은 문학적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고, 훗날 나를 국문학도가 되게 한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정신 없이 보내느라 작품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한 나는 국문과에 진학한 이후에도 「유정」의 남녀주인공들은 나의 뇌리 속에 잊을 수 없는 동경의 인간상이었고, 작자 이광수는 나의 유일한 우상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공의 깊이를 더해갈 때 춘원 이광수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창씨 개명 후 가야마 미쓰로오(香山光郞)으로서의 친일 행적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중학교 때 각인된 이광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양의 전통적인 ‘문즉인(文則人)관념’, 즉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등식 관념을 말끔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논어」 한 구절을 대하고나서 이러한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즉 “군자는 말로써 사람을 기용하지 아니하며 사람으로써 말을 버리지 않는다(君子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라는 공자의 말씀이었다. 진정한 군자라면은 말을 잘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들어 쓰지 않으며, 사람이 나쁘다 하여 그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 않는 법이다. 살인자의 말이라도 좋은 말이면 받아들이고, 존경 받는 사람의 말이라도 나쁜 말이면 버린다. 진시황을 도와서 분서갱유에 앞장서 많은 유학자들을 죽음에 몰아 넣은 사람인 이사(李斯)의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가 사람에 널리 회자되어온 『고문진보』에 지금도 전하지 않는가 !
사람이 나쁘다고 그의 좋은 말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필요는 없다. 친일파의 작품이라 하여 모두 버릴 필요는 없다. 나아가 ‘의(意)는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 말라(惡其意 不惡其人)’는 말이 있듯이 친일파의 의(意)는 미워해도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된다. 아마도 성인들이 살아계신다면 인(仁), 자비(慈悲) 사랑의 정신을 발휘할 때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이광수가 친일했다고 하여 그의 작품을 모두 버릴 필요는 없다. 친일한 뜻은 미워하되 인간 이광수까지 미워해서는 안된다. 그는 냉정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로서 서서히 압박해오는 완악(頑惡)한 야성(野性)마저 한몸으로 감싸 안으려 했던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가 아니었겠는가!
그는 누가 뭐라해도 한국의 대문호다. 한편 나에게는 사랑의 고뇌와 문학적 감동이 무엇인지를 최초로 심어준 더할 수 없는 유일무이의 작가다.

Ⅲ. ‘불이언거인 불이인폐언’
학생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간 대중의 정서를 순화시켜온 「고향의 봄」이나 「반달」이 교과서에서 삭제되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달달 외웠던 육당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문」이나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그리고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춘원 이광수의 「유정」도 친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워서는 안된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침이 행여 있어서는 안된다.
공자의 “‘불이언거인’하며, ‘불이인폐언’하니라”라는 말씀을 오늘날 깊히 되새겨 봐야한다. 교육은 학생 정서만을 우위에 두어서 안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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