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푸른 단추, 붉은 단추
백묵처방 / 푸른 단추, 붉은 단추
  • 김병석
  • 승인 1999.11.30 00:00
  • 호수 11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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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김 병 석 교수
<사범대·특수교육과>

푸른 단추, 붉은 단추

“…큰 것은 작게, 작은 것은 크게….” 20 대 초반에 읽은 독일의 휄더린 시집의 맨 앞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이다. 살면서 가끔씩 이 말이 되살아나곤 했다. 바람직하게 삶을 사는 법을 알고 싶었을 때 이 말은 내게 어떤 중요한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의 의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여러 다른 모습을 보면서 약간씩 이해되는 것 같았다. 이제 휄더린이 전하려고 하던 의미와 상관없이 이것은 삶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살고 있는 젊거나 나이든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기술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실망스럽거나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를 때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 큰 일, 혹은 심각한 일이라고 믿는 나머지 심한 실망감이나 분노에 빠져버린다. 심지어 그로 인해 오랫동안 원한이나 증오 혹은 공포심에 빠져 있을 때도 있다. 더욱이 그것은 자기중심적 가치판단과 뒤얽혀 점점 더 깊이 빠지는 수도 있다. 이때의 지각방식은 개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개미의 눈에는 어떤 것이든 크고 위험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차츰 새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더욱 높은 곳에서 삶을 보는 능력이 발달한다.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을 보면 큰 것도 작게 보인다.
인간은 철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더욱 더 멀리 멀리 보고 싶어 한다. 우주로 향하거나 우주 밖을 향하면서 더욱 더 넓고 멀리 있는 공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거나 시간적으로 앞선 사회와 앞으로 올 사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이제 새의 눈은 멀리 우주 밖으로까지 나가며, 수천 수억 년의 시간 저 너머에서부터 오늘을 지나 수십, 수백억년 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존재를 통시간적으로 이해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
우리의 눈은 개미의 눈이 될 수도 있고 새의 눈, 우주인의 눈, 나아가서는 영원의 눈이 될 수도 있다. 개미의 눈보다 영원한 시간의 눈을 가지면 화나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는 일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가치와 타인들의 가치를 마찬가지로 귀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의 삶을 이용하기보다 보살피는 마음을 오히려 기쁘게 여긴다. 더욱이 자신의 삶이 영원한 삶의 연속선 위에 있음을 알고 주어진 삶을 아끼고 기쁘게 살며 좋은 삶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 때 큰 것은 작은 것이 되고 작은 것은 큰 것이 된다. 실망스러운 것, 화가 나게 하는 것, 두렵게 하는 것들은 개미의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우주인의 눈에는 작은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일에 덤덤하고 오히려 그런 감정을 야기하는 사람이나 일을 측은하게 여기거나 자비로운 마음을 느낀다, 반면에 자신과 타인을 아끼고 배려하는 태도는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인다고 해도 영원의 눈에는 지울 수 없는 큰 것, 즉, 아주 좋은 일이 된다.
우리의 눈은 나이가 들면서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고,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만들 줄 아는 눈이 된다. 그러나 종종 우리 바램과 달리 그 눈의 배율이나 신축성의 정도는 그리 큰 것 같지 않다. 그것은 자기중심성과 감정조절기능의 상실 때문이다. 자기중심성이란 “나 같으면...”하고 말할 때 나타난다. “나 같으면...”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중심성이 심각한 사람이다. 감정조절 기능은 화나 우울, 때로는 붕붕 뜬 것 같은 기분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말한다. 특히 감정조절기능을 회복하는 일은 우리의 시각을 넓히는 지름길이다. 이것은 자기중심적 태도 때문에 쉽게 이루기 어렵다. 부정적 감정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일은 가위(假危)에서 벗어나는 일이나 깊은 바다 속에서 강한 수압을 뚫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일처럼 어렵다. 이런 이유로 감정조절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의식적 노력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 푸른 단추, 붉은 단추를 활용하는 일이다.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는 내 마음의 붉은 단추를 누르고 있는 때이다. 밉다, 미워해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망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붉은 단추를 누를 때 그 힘은 아주 세고 완강하다. 그러나 생각이 없어지면 그 힘이 사라진다. 푸른 단추는 우리가 안심, 기쁨,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단추이다. 화가 날 때는 생각하지 않고 푸른 단추를 눌러야 한다.

 

김병석
김병석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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