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안 희 진 교수 <인문과학대학·중국어전공>
백묵처방 - 안 희 진 교수 <인문과학대학·중국어전공>
  • 안희진 교수
  • 승인 1999.11.30 00:00
  • 호수 11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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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희 진 교수 <인문과학대학·중국어전공>
천안캠퍼스 교수학습개발센터부소장

신입생들, 오해해도 상관없어~

언젠가 도서관을 돌아보는데 별안간 문 밖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호~ 저 학우가 바로 그 유명한 영어의 달인!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영어 문장을 중얼거리기 때문에 교내 몬스터가 되어버렸다는. 그래도 난 그 학우를 기특하게 여긴다. 공부를 하려면 저렇게 해야지. 영어에 매달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우들에게 말한다. 영어에 왕도가 없다고? 천만에! 먼저 영어 ‘말하기’, ‘듣기’부터 얘기 하자. 말을 잘하려면 말을 많이 해야지. 이거 당연한 얘기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들어~. 영어에는 왕도가 있다. 첫째는 큰 소리로 읽거나 말하기, 소리 내서 암기하기. 바로 그거야. 그담은 죽어라 하고 듣고 반복하기. MP3도 있는데 뭐가 어려워? 다 아는 얘기. 이런 건 유치원 때 다 해본 거 아녀? 근데 중요한 건, 나이가 들수록 영어를 머리로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머리’는 복잡해서 들어가기도 어렵고, 나오기도 어려운 법. 영어를 포함한 모든 외국어는 ‘몸’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마치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몸이 지치도록 트레이닝을 하다보면 그 몸이 반응을 한다. 혀와 입 주위의 근육에 발음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손이나 몸의 동작과 함께 하는 게 가장 좋은 언어학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절로 몸에 배게 하는 것, 그게 언어공부다. 머리에 잘 안 들어간다고? 한 살짜리는 한번에 들어가고 두 살짜리는 두 번 들으면 들어간다. 그럼 대학 1학년이 된 스무 살짜리는? 당연히 스무 번이다. 자, 이제 다시 한 번 새겨두자 - 큰 소리로 말하고,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하기. 이 두 가지가 ‘말하기’의 왕도다. ‘듣기’로서의 언어는 위의 수준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고 나서다. 국내에서 좋은 방법은 영어 방송 듣기다. TV보다는 라디오방송이 훨씬 선명하고 귀에 잘 들린다. TV는 눈치 이해가 오히려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어 다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거, 다 알지? 오해해도 상관없어~. 난 말을 잘 못하는 사람 보면 그냥 꼴도 보기 싫은 걸. 그런 사람한테 영어 배우라고 하면 죽으라는 소리겠지. 한국말을 잘해야 외국말도 잘 배운다는 건 사실이다.

매년 입시 관련해서 수험생 면접 보면 얼마나 말들을 못 하는지 복창이 터진다. 그런 친구들이 어떻게 외국어를 잘 하겠니? 그런 친구들은 제치고 전국에서 가장 나은 사람들을 뽑아서 우리 대학의 아들딸로 키우는데, 다들 4년 내내 영어에 매달리다보니 전공실력도 어중간하고, 영어도 별 볼일 없다면 얼마나 속상한 일? 그래서 우리 학교 교수학습개발팀의 이 팀장이 학우들을 위한 ‘곰돌이 영어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멘토링이라는 건 쉽게 말하면 스터디 그룹 활동. 그 중 영어 실력이 가장 좋은 학우가 ‘멘토’ 역할을 맡고, 나머지는 ‘멘티’가 돼서 서로 공부를 도와서 밀어주고 끌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작년 가을 학기부터 매번 1백명 이상이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는데, 곧 1천명 이상으로 늘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한 명의 곰돌이 멘토를 둘러싸고 5-8명의 멘티가 모여서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하는 것. ‘코리아헤럴드’나 ‘타임’지 죽이기, 토익 900점 따라잡기, 좋은 책 골라서 철근처럼 씹어 먹기……. 이런 전략을 세우고 캠퍼스 구석구석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다. ‘읽기’, ‘쓰기’를 위해서는 이렇게 ‘함께 공부하기’가 비결이다. 어려운 책 둘러메고 다니면서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공부는 버려라.
글로벌화 된 세상의 부작용은 한마디로 ‘빈익빈 부익부’라는 거다. 직장인이 고액 연봉군과 비정규직 노동자군의 양극화로 들어선 건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또 직장인 구조만 그런 게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도 경제적인 양극화가 되고 말았다. 각국의 내부에선 문화시장도, 제조업 공장도, 언론 방송도, 포털 사이트도 이 세상은 부자는 더욱 부자 되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예외가 아닌데, 또 그 대학 안의 각 전공도 마찬가지. 양극화는 어디에서 기인할까? 지식 정보화된 세계에서는 모든 사회 구조가 열린 방향으로 진행되며, 오늘날 모든 우월한 자의 힘은 그 열린 구조에서의 정보 획득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정보는 그것을 공유하는 무리들의 언어에 다 들어있는 거다. 과거에도 일부 귀족들은 평민이 사용하지 않는 어휘와 발음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정보에 접근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귀족이 되는 세상. 그리고 그 능력의 끝에는 영어가 있다. 정말, 영어가 권력이다. 일부 국수주의자들이 거세게 반대하지만 머지않아 국내 공식문서에는 한글 문장 아래에 영문이 붙게 될 거다. 우리가 좋아하던 싫어하던 상관없이.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우월한 그룹에 서려면 영어를 잘 구사해야 한다.

 

안희진 교수
안희진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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