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강의실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나만의 강의실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 정원진 교수
  • 승인 2006.05.23 00:20
  • 호수 11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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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강의실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해결책을 구하는 긴 여정
작년 9월 단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첫 강의를 시작한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필자에게 두 번째 학기도 어느덧 학기말로 달려가고 있다. 단국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기 전 어느 여타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당시 필자 또한 필자만의 교육관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희망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생각에서 기인한 그릇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결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교수가 되기 전 강의 경험이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한 필자로서는 필자의 강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없이 막연히 평소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강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희망이 현실을 깨닫고 현실과 부딪히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기대했던 만큼 학생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 내는 강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초년병 교수로서 그간의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학기 초 초롱초롱하던 학생들의 눈망울이 학기가 중반으로 넘어 갈 때쯤 이면 여기 저기 조는 학생과 엎으려 자는 학생, 강의실 뒤편에서 웅성웅성 떠 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심지어 화장실 가는 척 하며 나간 학생은 수업이 끝날 때 까지도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과제물은 많은 학생이 베껴오고, 이를 적발하면 이후 수업 분위기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러한 상황들에 당황하여 계획했던 수업은 기대 이하의 수업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도대체 학생들이 왜 수업에 집중하지 못 할까? 필자에게 반복하며 질문하고 해결책을 구하려 노력하다가 문득 필자의 대학시절 필자는 어떤 학생이었는가에 까지 질문이 이르러 기억이 흐릿하게 지워져 가던 학창시절로 되돌아 간다. 지금 와 회상하면 그 시절 필자 또한 현재 필자의 강의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여타 학생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새삼 떠 올리며, ‘그때 왜 나는 교수님들 강의에 집중을 하지 못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 보니 현재 필자의 강의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학생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일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눌변(訥辯)에 친화력 결핍인 필자의 강의는 마치 미리 녹음된 강의 내용을 비디오 틀어 놓은 듯, 학생이 학업에 열정을 갖고 있지 않다면 필자의 강의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많은 지식의 전달만을 목표로 했었던 필자의 강의는 당연히 무미 건조해지고, 이는 몇몇 학생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당연한 수순을 밟았다고 보여진다. 평생을 학생교육에 몸 담았던 수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께서 이미 말씀하신 교수법들이 현재 필자에게는 절실히 공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수법들이 필자의 부족한 부분을 완전히 채워 줄 수 있는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배 교수님들과 일정부분 다른 필자만의 성격과 맡고 있는 과목의 특이성이 분명 존재하기에 결국 이는 선배 교수님들의 교수법을 바탕으로 필자만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스스로 구해야 하는 아마도 기나 긴 여정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옛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필자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필자와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게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본다.

정원진<상경대학·경영학부·경영정보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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