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③ “잘해야 본전”인 일기 예보
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③ “잘해야 본전”인 일기 예보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6.09.12 00:20
  • 호수 11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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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③

“잘해야 본전”인 일기 예보

지난 8월 평균 기온은 섭씨 26.5도로 전국 60개 지역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로 두 번째로 더웠던 달이었다. 세월 앞에 장사(壯士) 없다고 백두장사급 폭염 속 8월도 그 기력이 쇠진해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긴소매가 어울리는 계절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 속에서 일기 예보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기 예보의 정확도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체감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올 봄 전망한 올 여름의 날씨도 사실은 한라장사급 더위였었다.
일기 예보는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유일한 뉴스 정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알려준다는 점에서 기상캐스터와 점쟁이는 유사하다. 일견(一見), 기상캐스터는 과학적으로 수집된 자료를 근거로 예측하므로 점쟁이보다 더 높은 적중률을 보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기 예보의 평균 적중률이 80% 안팎이고, 특히 대기가 불안정한 여름에는 이보다 더욱 낮은 적중률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상캐스터가 점쟁이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여름철 일기 예보는 왜 이렇게 빗나가는 것일까? 일기 예보의 적중률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크게 지형지세(地形地勢)와 기상 인프라의 구축 수준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두 가지 요인 모두 일기 예보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국토의 70%가 산악이라는 특수성을 가진다. 온도와 습도가 상이한 바다 위 기단과 육지 위 기단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전진과 후퇴를 계속하며 변화무쌍한 날씨를 연출하고 있다. 지면의 굴곡이 심한 산악 지대를 지나면서 공기 덩어리 역시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질이 변화된다. 만약 우리나라가 내륙의 지표면이 평평한 사막에 위치했다면 기상청이 일기예보로 질책 받을 일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기상 인프라 구축 수준은 국력에 비례한다. 지상과 상공의 기상 관측 설비가 많을수록 정확한 예보가 가능함은 상식이다.
일기 예보는 “잘해야 본전”이다. 일기 예보가 적중했다고 감탄하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기 예보란 적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쨍하고 해뜰 날’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은 다음 날, ‘가을비 우산 속’ 상황을 마주했을 때 기상청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더 쉽지 않다. 기상청 관계자들의 어려움을 공감까지야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배려도 필요한 것 같다.
멋진 기상 위성 사진을 배경으로 여배우 버금가는 출중한 외모에, 아나운서 뺨치는 옥구슬 목소리에, 서비스업계 종사자처럼 느껴지는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TV의 여성 기상캐스터는 “내일 서울 지역의 강수 확률은 30%입니다”라고 말한다. 30%라는 수치는 꽤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일 우산을 챙겨 나가야 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커다란 종이에 그려진 일기도 위에 매직펜으로 공기의 이동 방향을 그려가며 “내일 서울 지역에 비가 오락가락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20년 전의 일기 예보가 생각난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를 지닌 ‘김동완 기상 통보관’의 말에 지체 없이 접이 우산을 가방에 넣었던 그 때의 일기 예보가 오히려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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