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⑤ 단풍 여행
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⑤ 단풍 여행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6.09.26 00:20
  • 호수 11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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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⑤ 단풍 여행
단풍의 계절이다. 단풍 든 가을 산이나 봄꽃이 만개한 봄 산이나 모두 형형색색의 빛깔을 뽐낸다. 그런데, 봄 산과 가을 산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꽃으로 물든 봄 산은 분위기 없이 그저 풋풋한 화려함만을 갖춘 20대 초반의 배우 느낌이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은 삶의 분위기를 가득 담은 사십을 넘긴 배우 느낌이다. 진달래의 꽃분홍은 한껏 멋 부린 스무 살 여대생이 바른 립스틱처럼 밝고 사랑스럽다. 단풍나무의 적색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한물 간 퇴기(退妓)가 칠한 립스틱처럼 어둡고 농염하다.
단풍의 색이 발산하는 깊이는 한 시절을 풍미한 잎들만이 낼 수 있는 깊이다. 그래서 단풍의 색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개나리는 예외 없이 노랑이고, 진달래도 예외 없이 분홍이지만, 단풍나무 색은 자주도, 빨강도, 그렇다고 보라도 아니다. 제각각 조금씩 다른 빛깔을 띠는 단풍잎도 시작은 모두 연한 녹색이었다. 시작은 별반 차이가 없지만 환경에 따라 너무 달라지는 우리네 인생과 마찬가지로 양지에 자리 잡고 적절한 수분과 양분을 섭취해 온 부유층 단풍과 그렇지 않은 서민층 단풍의 색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인간이 불혹을 넘기면서 노후를 대비하듯이 나무도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겨울 준비를 한다. 나무에게는 기온의 하강이 곧 고난의 시작이다. 일차적으로 광합성이 진행되지 않게 된다. 이는 더 이상 잎에서 양분을 얻을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나뭇잎 세포들이 양분을 소비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래저래 나뭇잎은 나무에게는 버거운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광합성을 못하는 엽록소는 파괴되고 나무는 잎자루를 막아 양분이 통하는 길을 차단한다. 즉, 잎의 밑단에 코르크처럼 단단한 세포층인 떨켜가 만들어지고 이 떨켜가 영양분의 이동을 차단해 엽록소의 생성을 더 이상 어렵게 한다.
반면, 나뭇잎에 있던 기존의 엽록소는 햇빛에 파괴되면서 줄어들기 때문에 잎의 색깔이 변하게 된다. 이 때 나뭇잎에는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는데, 첫 번째는 나뭇잎 세포의 엽록체 파괴다. 이로써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색소인 카로티노이드 색소, 즉 노란색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두 번째는 미처 나무로 옮겨지지 못한 나뭇잎 세포 속의 당분이 산화해서 다른 성분으로 변하는데, 이 당분은 또 다른 색소인 안토시아닌과 결합해서 단풍의 색을 붉게 만든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라 하셨다.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어진 사람은 산 중에서도 가을 산을 가장 좋아했으리라. 더 매력적인 꽃을 피우려고 안간힘 썼던 봄, 더 많은 잎들을 만들어내 조금이라도 더 커지려고 발버둥 쳤던 여름을 지나, 이젠 무엇을 더 얻고 채우려 하기보다 차갑고 외로운 겨울에 대비해 여생을 준비하는 단풍이 가을 산에 있음에서다.
올 가을엔 단풍으로 붉게 물든 남산의 돌계단이라도 오르면서 인자(仁者)인양 해봐야겠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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