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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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덕규 교수
  • 승인 2006.10.10 00:20
  • 호수 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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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박 덕 규 교수
<예술대학·문예창작과>

핑계대지 말고 문화를 체험하라

대학생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신분이지만, 다른 어른들이 좀처럼 잘 할 수 없는 세 가지 체험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기요 계층의 사람들이다. 그 세 가지 체험은 이런 것들이다. 우선 대학생은 말할 것도 없이, 강의실에서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자기 본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이 당연한 것도 잊고 사는 대학생이 있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이 말에 더 설명을 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생은 캠퍼스에서 일과의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복도에서, 도서관에서, 잔디밭에서, 식당에서, 운동장에서, 캠퍼스의 많은 공간에서(때로는 학교 앞 주점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대화하고 먹고 마시고 놀고 또 공부한다. 어떤 학생은 학과 일에 참여해 일하고, 어떤 학생은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고, 어떤 학생은 향우회에 가담해 친목을 다지고, 어떤 학생은 그냥 친구끼리 어울려 지내며 캠퍼스 안팎을 누비면서 지낸다. 이 역시 대학생이면 누구나 하는 일이고 쉽게 누리는 일이라 더 말할 게 없을 거 같다.
세 번째로, 대학생은 영화, 연극, 뮤지컬, 전람회, 이벤트 행사 등의 각종 문화 프로그램의 가장 확실한 고객층이 되어 즐기는 사람들이다. 또 방학이나 긴 공강 날을 이용해 자유롭게 여행도 할 수 있다. 쉬운 예로, 한국 연극의 80% 이상을 감당하는 서울 종로구의 대학로는 대학생 없이는 상상이 안 되는 거리이고, 따라서 한국 연극 역시 대학생 없이는 현상 유지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뮤지컬이 각광 받고 있는데, 뮤지컬 역시 대학생층이 없다면 이즈음의 인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라고 다르겠는가? 놀이공원이나 광고회사, 이벤트회사 등에서 벌이는 각종 문화이벤트는 또 어떻겠는가? 배낭여행이나 가격대가 낮은 테마여행 같은 것도 대학생이면 누구나 시도해봄직하고 실제로 많은 대학생이 체험하고 있는 일이다.
사실, 이 세 가지 일은 보통의 대학생이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하고 있고 즐기고들 있는 일이다. 알아서들 잘 하고 있는 걸, 이 자리에서 다시 말하는 까닭은 뭔가? 이 세 가지가 모두 그만큼 중요해서다. 그 대학생의 시기가 다시 오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이 세 가지를 다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이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 일의 중요성은 잘 느끼고 있어서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기도 잘하는 편이다. 소위 모범생이면서 활동적인 대학생은 첫 번째 일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일까지도 알아서 잘 행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세 번째 일의 경우다. 많은 대학생들이 세 번째 일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별도로 있어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태어나 자발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체험하는 것을 일상화할 수 있는 시간은 비로소 대학생 때에 얻을 수 있는데도, 이걸 안타깝게 모르고 지나친다. 대학생의 진정한 특권이 이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많은 대학생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과도한 입시 경쟁 속에서 내면을 가꿀 틈이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각박한 생업 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대학생 때와 같은 기회가 오지 않는다. 대학생 시절에 진정한 앎을 깨닫기 위해, 삶의 정신적인 가치를 얻기 위해, 마음의 안식과 여유를 얻기 위해 애쓴 그 시간들이야말로 진짜 어른이 되어 각박한 세파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원동력이 된다. 문화와 예술을 체험하는 걸 당연시해온 사람들은 그만큼 창의력도 커져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면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공연과 전시를 관람해본 경험이 많은 부모는 자녀 교육을 하는 차원도 그만큼 높아져 있는 셈이다. 그런 사람들이 가꾸는 세상은 또 얼마나 인간다운 세상일 것인가!
대학생이 공부만 잘 하면 되지 다른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사람도 있겠다. 곧 닥칠 취업 부담 때문에 그런 다양한 대학 생활을 꿈꾸지 못하겠다는 친구도 있을 거다. 돈이 없어서 등록금 내기도 힘든 상황을 호소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숙제 과다, 실연의 아픔, 입대 계획, 유학 계획 등등 나름대로 사연도 많겠지. 그러나, 어쨌거나 대학생은 어른이지만 아직 책임은 덜 져도 되는 유예된 어른이다. 부족한 것이 많아 보여도 좋은 신분이다. 더 목말라 하고 더 배고파해도 좋은 시기이다. 찾아 나서면 빈 속, 덜 찬 내면을 채워줄 것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걸 자기 걸로 만드는 거다.
대학의 중심은 물론 강의실다. 조금 더 확장하면 캠퍼스 문화 자체가 대학생의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사회나 특정 문화소비 공간에서 행해지는 무수한 문화체험의 공간이 대학생의 영역이다. 그 영역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어 대학생 스스로의 특권을 최대한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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