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⑨ 안개 유감(有感)
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⑨ 안개 유감(有感)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6.11.14 00:20
  • 호수 1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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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⑨

안개 유감(有感)

밤안개가 자욱하게 낀 강변도로를 운전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뿌연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울적해 지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이른 아침 물안개가 자욱한 호숫가를 산책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하얀 안개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센티멘탈해 질 수 있는지를. 운무(雲霧) 낀 산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셔본 사람들은 다 안다. 촉촉하게 깔린 운무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로맨틱하게 해 주는지를.
가로등도 없는 안개 자욱한 밤길을 운전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거북보다 느린 속도로 운전함에도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른다는 것을. 활주로에 짙게 깔린 안개를 뚫고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 있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을. 두터운 스모그 현상이 있는 대도시에 거주하는 기관지질환 환자들은 다 안다. 기침과 가래 증상 악화에 스모그가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를.

감성을 충만하게 해 주기도 하고, 심신에 위해를 가하기도 하는 안개는 공기 중 수증기가 응결되어 떠 있는 것으로 생성 기작은 본질적으로 층운(層雲)과 같고 단지 지표면에 접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대기 구성 성분 중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로 존재 가능한 유일한 것이 H2O다. 대기 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 상태인 수증기의 모습으로 있다가 외부에서 수증기가 공급되거나 기온이 냉각되어 포화수증기압에 도달하면 응결되어 액체 물방울 상태인 안개나 구름의 모습으로 떠 있게 된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물방울이 냉각되어 고체 상태인 서리로 지표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안개가 자주 끼는 이유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계절적 요인 때문이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 일몰 후 지면 위 공기가 급하게 냉각되면서 수증기가 포화되고 응결이 일어나 복사안개가 형성된다. 새벽이나 늦은 밤에 끼는 안개는 대부분 복사 안개인 경우가 많다. 수증기와 열을 저장하고 방출하는 능력은 지면 성질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바다, 호수, 강, 저수지와 같이 수증기의 원천과 가까운 지역에서 복사안개의 발생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지난 추석 연휴 서해대교에서 발생한 대규모 연쇄추돌사고 당시의 짙은 안개도 복사안개였다. 요사이 늦은 퇴근길에 한남동 캠퍼스 본관 앞 주차장에서 만나게 되는 자욱한 안개 역시 일몰 후 빠르게 냉각된 아스팔트면 위의 공기가 응결되어 나타난 복사 안개다. 한남동 캠퍼스의 위치가 수증기 공급처인 한강과 인접한 것도 빈번한 안개 형성에 한 몫 한다. 근처의 장충동도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란 옛 노래가 나올 만한 충분한 안개 형성 조건을 갖춘 곳이다.
연인이 건네 준 장미를 더욱 열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안개를 닮은 안개꽃이다. 무대 밑에서 뿜어 나오는 인공 안개는 우리를 가수의 열창에 더욱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안개꽃이 ‘약속’과 ‘죽음’의 꽃말을 동시에 가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연인들은 ‘안개’ 속에서, ‘안개꽃’에 묻힌 장미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약속’하고, 가수들은 ‘인공 안개’가 깔린 환상의 무대 위에서 미래의 톱스타를 ‘약속’한다. 안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의 목숨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안개의 양면성이 안개꽃의 꽃말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우연치고는 신기하다. 이래저래 우리 인간을 가지고 노는 안개에 유감이 많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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