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⑭
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⑭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7.03.13 00:20
  • 호수 11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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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생활 속 과학 ⑭

꽃샘추위

지난 겨울은 우리나라에서 기상 관측 이래로 100년 동안 세 번째로 따뜻했다. 단 한 번도 한강물이 얼지 않았는데, 이는 14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36년 만에 가장 추웠다던 지난 6일의 경칩 날씨 때문에 동면하던 동물들은 물론이고 사람들까지도 번쩍 놀랐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으레 찾아오는 꽃샘추위로 보기에는 너무 추운, 기상 이변에 가까운 이상 저온 현상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례적으로 길고 강했던 이번 꽃샘추위의 원인이 포근했던 겨울이라는 주장도 최근 제기되었다. 자연은 평형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는데, 지난 겨울이 너무 따뜻했기 때문에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찬 기운이 뒤늦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부분적으로 보면 기상 이변이나 전체적으로 보면 정상이라는 설명이다.
환절기란 말이 있듯이, 계절은 한 순간에 확 바뀌는 것은 아니다. 꽃이 펴야 할 봄에 찾아든 늦추위에 해당하는 꽃샘추위는 입추(立秋)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더운 늦더위와 같은 이치다.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단이 달라지면서 계절이 바뀌게 되는데, 겨울철 우세했던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약해지고 봄철에는 양쯔강 기단의 세력이 강해진다. 기세등등한 양쯔강 기단에 눌려 물러나는 시베리아 기단이 마지막으로 꿈틀할 때 꽃샘추위로 나타난다. 가을 늦더위도 차가운 대륙 기단인 시베리아 기단이 남하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꽃샘추위의 기압 배치는 3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약해져 북서풍도 약해지면 추위가 덜하게 되는데, 이 때 동해상으로 저기압이 진행하여 발달하면서 남부 지방에는 따뜻한 남서풍이 불어 들어온다. 이렇게 따뜻할 때 다시 겨울형 기압 배치가 되면 실제보다 추위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둘째는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떨어져 나온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 주변을 덮게 될 때 초봄의 기온이 내려간다. 특히 맑은 날 밤은 복사 냉각, 즉 낮에 지면에 흡수된 열이 밤에는 다시 방출되어 기온이 떨어져 더 춥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 부근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지날 때는 흐린 날이 되므로 낮에도 기온이 오르지 않고 저온 현상이 발생하게 되어 꽃샘추위가 찾아든다.

한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이었고,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고 있는 왕소군(王昭君)이 있다. 왕소군이 흉노족 왕에게 끌려가는 가련한 처지를 읊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구절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민주화의 봄을 꿈꾸던 정치권에 찬기운을 끼얹었던 군사 구데타로 들어선 군부의 서슬 푸른 위세를 빗대어 어떤 정치인이 이 싯귀를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요즘 날씨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딱 들어맞는 말이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상황은 날씨 말고도 많다. 봄이 왔건만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상대의 마음이 꿈쩍도 않는 것, 봄이 왔건만 여권의 대선 주자들의 인기도가 여전히 바닥세를 치고 있다는 것 등이 다 그렇다. 그러나, 10여 년의 동면에서 깨어나 비로소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려는 우리 단국 곰돌이들은 분명히 ‘봄 같은 봄’을 맞이할 것이라 기대한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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