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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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부
  • 승인 2007.01.02 00:20
  • 호수 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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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묵처방

경제는 미래 사회의 창이다

얼마전 엘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일독하였다. 이 책에서 현재와 미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을 들고 있다. 현재와 미래는 시간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데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것들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교육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결론을 보면서 현재 한국의 공교육의 위기라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토플러식으로 보면 한국의 교육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의해 디지털과 글로컬의 시대에서 새로운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정립하려고 하지 않고 여전히 한국 전통이나 후기산업사회의 가치관에 매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교육을 많이 비판하지만, 한국의 사교육이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에 가장 빠르게 순응을 하고 대처를 하기에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대학에서의 교육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인 한국 문학이 언제부터인가 디지털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연구를 내놓기 시작하더니 콘텐츠 분야로 업종 전환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미래의 한국 사회는 분명히 콘텐츠에 의해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부와 사회 각계의 의지이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한국의 경제 수준이 1인당 3만불 이상의 소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학이 지금까지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산업과 경제적 효용성을 지닐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는 점이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인쇄기술의 시대부터 가져 온 문학에 ‘인간 해방’이나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삶의 성찰과 반성’이라는 이해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달리 말해 문학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에 의해서다. 엘빈 토플러가 앞의 책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미래 사회는 분명히 부의 사회이다. 그런데, 그 부를 어떻게 획득하고 어떻게 공유하며 살 것인가가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돈을 벌겠다고 대답을 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되었다. 그런데 그들 중 대부분 어제 증권시장의 주가 지수가 얼마인지를 알지 못한다. 은행에 저축을 하거나 돈을 절약하거나 하는 등의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 보다는 경제를 아는 것이 먼저이어야 하는 것이다. 경제를 알면 작게는 자신의 삶부터 시작하여 우리 사회를 알 수 있고 한국이나 세계 정세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2006년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에 대한 해외펀드가 큰 수익을 남겼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엘빈 토플러가 예견을 하고 미국 국가정보위원회의 보고서에도 나와 있듯이, 2020년 정도 되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이 세계의 강국이 될 것이며, 이들 국가의 경제 규모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며, 2040년 되면 중국이 세계 제일의 부자 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점이 펀드의 수익률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경제를 알면 한 나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와 함께 인간의 사회적 삶의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읽어낼 수 있다. 방글라데시 글라민은행 총재인 무하마다 유누스는 소액대출제도인 ‘마이크로크레딧’ 를 창안하여 방글라데시의 빈곤을 퇴치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것이 높이 평가 받아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마이크로크레딧’은 담보 능력과 없는 사람끼리 그룹을 지어 상호 보증을 서 주고 은행으로부터 창업 자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전개시켜 나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이윤도 나눠 갖는 제도이다. 이 제도로 인해 방글라데시에서 각종 일자리가 만들어져 실업률이 감소하고 빈곤율도 상당히 감소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부란 정글의 법칙처럼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서 획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동을 하여 나갈 때 상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경제적 부란 인간 삶의 상호성에 의해 형성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 정 권 교수
<인문과학대학·한국어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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