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18
유레카! 생활 속 과학 18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7.04.10 00:20
  • 호수 11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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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생활 속 과학 ?
황사의 추억

3월의 마지막 날부터 4월 둘째 날까지 한반도 전역이 모래 폭탄 세례를 당했다. 기상청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황사 특보를 발표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로, 전국에 걸쳐 거의 동시에 황사경보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주말 아침 창 밖에 비춰진 세상을 보자마자 누리끼리하게 빛바랜 사진 속 추억의 풍경을 연상했다. 그러다가 황사 속 세상을 보고 빛바랜 사진 속 풍경을 떠올리는 것이 도저히 격이 안 맞음을 느꼈다. ‘창 밖 세상은 온통 황달에 걸려 앓고 있음’이 제격이었다. 우유빛으로 활짝 핀 목련도, 조심스럽게 피기 시작한 연분홍 벚꽃도 다 누런 먼지를 뒤집어쓴 것이 애처로워 보였다.
사실 황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174년 하늘에서 흙먼지가 낙하하는 현상이 ‘우토(雨土)’로, 조선왕조실록에는 ‘토우(土雨)’로 적혀 있다. ‘황사(黃砂)’란 용어는 1915년, 일제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실제로 황사 현상의 기원은 역사 시대를 거슬러 지질시대까지 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현상이다. 바람에 의해 침적한 모래와 진흙이 섞인 점토를 뢰스(loess)라 하는데, 뢰스는 약 1백80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되었다. 현재 전 세계 지표면의 10%가 뢰스 지대인데, 그 중 가장 넓고 두텁게 침적된 지역이 중국의 사막 지역이고 바로 이 곳이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가 출발한 곳이다. 발원지에서 떠오른 황사의 총량이 해마다 2천 만 톤에 이르고, 이 중 한반도에 쌓이는 것이 많게는 8만 톤이나 된다. 가늠조차 어려운 엄청난 양이다.
황사는 왜 주로 봄에 한반도를 덮칠까? 여름에는 발원지에 비가 내리고, 가을에는 땅에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겨울에는 땅이 얼어 모래가 상대적으로 이동하기 어렵다. 반면, 봄에는 얼었던 건조한 토양이 녹으면서 부서져 부유하기 쉬운 20㎛ 이하 크기의 모래 먼지가 발생할 여건이 형성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황사 현상은 3~5월 사이에 걸쳐 나타났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 3~4월에 집중되고 5월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진 탓이다. 멀게는 5,000㎞나 떨어진 발원지로부터 한반도까지 모래 먼지가 이동하려면 우선 발원지 부근에서 강한 상승 기류가 있어야 한다. 모래 먼지는 상승 기류에 의해 3,000~5,000m의 높은 상공까지 올라간 후, 편서풍이나 제트류를 타고 한반도까지 온다. 상공에 부유 중인 황사가 한반도 지표면까지 낙하하려면 상공에 고기압이 위치하여 하강 기류가 발생하는 기상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밖에서는 올봄 최악의 황사 현상이 나타나던 지난 만우절, 서울캠퍼스 근처 한 호텔 안에서 한미 간 최종 FTA 협상이 있었다. 전후 맥락으로 보아 협상장 안의 분위기는 협상장 밖의 황사 이상 가는 메케하고 갑갑한 분위기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FTA는 그럭저럭 잘 마무리된 것 같다. 보도에 의하면 중국에서도 우리 나라와의 FTA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중국과의 FTA 협상이 시작된다면, 수천 년 동안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모래 폭탄을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자유(free) 무역(trade) 협정(agreement)에서는 양측의 장점을 살려 자유롭게 주고받아야 할 텐데, 우리는 그 동안 달갑잖은 모래 먼지를 지나치게 많이 받지 않았는가? 중국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환경권을 요구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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